우리 사회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란 단어가 한동안 회자된 적 있었다.
이 단어의 음율을 차용해 탄생한 신조어는 '소확횡'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라는 뜻의 '소확횡'이라는 단어 역시 몇 해 전부터 유행처럼 돌고 있다.
'소확횡'의 유형
회사의 유무형의 자산을 개인적으로 '슬쩍'하는 것을 의미하는 '소확횡'의 유형을 구분해 보자.
첫째, 회사물품 슬쩍 유형이다.
대표적으로 회사에 비치된 필기구 등 사무용품 챙기기, 아이의 숙제나 개인용도의 문서를 회사 프린터로 출력하기, 스테이플러나 프린터 용지 같은 회사 비품을 집에 가져가기 등이 있다.
둘째, 근무시간 슬쩍 유형이다.
근무시간 중 몰래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불필요하게 계속 화장실에 가거나, 흡연을 위해 자리를 자주 비우는 유형이다. 회사 전화로 근무시간에 개인적 수다를 떨면 '비품 절도'인 동시에 '시간 절도'가 된다.
셋째, 복리제도 슬쩍 유형이다.
회사 의료비 지원제도를 악용해 불필요한 치료를 받고 치료비에 대해 회사로부터 의료비 지원과 실손보험 보상을 함께 받아 병원을 다니며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사례다.
회사가 지원하는 사이트에서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해 '당근마켓' 등에서 이익을 남기고 파는 유형도 있다.
마지막으로, 회사 기밀 슬쩍 유형이다.
회사 기밀을 외부에 흘리는 것은 엄연한 '정보 절도'다.
직원이 생각하는 '소확횡' 허용 범위
기업정보 공유 플랫폼인 잡플래닛이 지난 2022년 진행한 '소확횡'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업무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시간 횡령' 중 업무 시간에 여행 정보를 찾아보는 것에 대해서는 잠깐이니까 괜찮다(57%)는 답변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업무 시간이라도 '잠깐'은 눈감아줄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잠깐'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 걸까?
30분 정도 우체국이나 은행 등 개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없다(53%)는 답변이 과반수였다.
급한 개인 용무가 있다면, 30분 내외의 업무 시간은 개인적으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업무 시간에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도 '괜찮다'와 '안 된다'가 각각 절반인 50%를 차지했다.
회사 비품의 개인 사용에 대해서는 해당 물품이 사무용품인 경우에는 챙겨가도 상관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예를 들어 회사 볼펜은 어차피 쓰라고 둔 거니 집으로 가져가도 괜찮고(60%), 회사에서 개인 자료를 출력하는 것도 괜찮다(78%)는 게 다수의 선택이었다.
생활용품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 달랐다.
간식류에 대해서는 챙겨갈 수도 있다는 답변이 53%, 회사에서 일하면서 먹으라고 둔 건데 집에 왜 챙겨가느냐는 답변이 47%였다.
물티슈를 집에 가져가는 직원에 대해서는 안 된다(72%)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간식이야 직원들 먹으라고 둔 거라지만, 물티슈 같은 생활용품은 양심상 가져가기 불편하다는 의견이었다.
한편 '사무실에서 보조배터리를 3개씩 충전해가도 되는지'라는 질문에는 '괜찮다'고 답변한 이들이 71%에 달해 전기 사용에는 관대한 반응을 보였다.
법적 관점의 '소확횡'
법적 관점의 소확횡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소확횡'이 정확한 단어인지 살펴보자.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물건을 반환하지 않을 때 성립한다.
회사 비품을 관리하거나 보관하는 직원이 아닌 이상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회사의 재물인 회사 비품을 직원이 마음대로 가져가면 '절도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소확횡'의 정확한 명칭은 '소확절'이 맞겠다. 절도는 엄연한 범죄이다.
형법 제329조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경우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규정돼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슬쩍'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면 횡령죄가 아닌 절도죄 처벌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행화된 경우가 많아 실제로 회사가 직원을 고소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소소해도 확실하게 절도'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반면, 공사公私 구분이 명확한 서양에선 이 같은 행위를 '직원 절도Employee theft'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단속한다.
미국에서는 직원 절도로 인한 기업들의 손실이 연간 수백억 달러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공사 구분이 모호하고 온정주의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조직 분위기를 감안하면 심각성은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사례로 보는 '소확횡'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또는 지인의 입을 통해 소확횡 사례를 전해듣곤 하지만, 실제로 소확횡으로 법적 조치가 이뤄진 경우도 있다.
▪️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목장갑을 회사 승인 없이 회사 밖으로 반출한 근로자에게 내린 출근정지 30일의 징계처분은 징계재량권 남용이라 볼 수 없다_서울행정법원 2022. 7. 21. 선고 2021구합58202 판결
▪️ 업무시간 중 매일 집에 들러 3시간 넘게 개인적 용무를 본 영업직 사원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_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2. 10. 선고 2021가합541337 판결
▪️ 수습기간 중 근무시간에 수시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부하직원과 불화를 일으킨 보안반장에 대한 근로계약 해지는 정당하다_서울행정법원 2015. 10. 15. 선고 2015구합5832 판결
▪️ 근로자가 3개월간 59회의 무단외출과 7일간의 지각을 하고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경우 징계해고 사유가 된다_대법원 1996. 9. 20. 선고 95누 15742 판결
'소확횡'이 확산되는 이유
'소확횡'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원인이 직원들이 회사 안에서 느끼는 불만족을 소소한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많다.
관련 내용을 연구한 논문을 참고해 '소확횡'의 발생 요인을 살펴봤다.
먼저, 개인적 요인의 경우 욕구 불만과 스트레스 정도가 직원 절도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욕구 불만이 클수록 현금 절도, 물품 절도, 정보 절도에, 스트레스 정도가 클수록 시간절도, 현금 절도, 물품 절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적 요인으로는 직원 절도에 대한 처벌 가능성, 직무 불만족, 갈등 정도가 직원 절도에 영향을 미친다.
직원 절도에 대한 인식이 낮고 처벌 가능성이 낮을수록 시간 절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직무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수록 물품 절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으로는 조직 분위기와 직원의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직원 절도에 관대한 조직 분위기는 현금 절도, 물품 절도, 정보 절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마치고, 경제적 어려움이 클수록 모든 직원 절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마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확횡' 확산 방지를 위한 대처
소확횡 확산을 막기 위해선 먼저, 조직에서 소확횡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
관행으로 간주되는 소확횡이 징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회사 차원에서도 소확횡을 방치하다가 갑자기 징계 등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공지 등을 통해 '소확횡은 심각한 문제'라는 점, '징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직원에게 인식시켜야 하고, 의식 전환을 위한 윤리교육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조직 분위기 조성이다.
직원들 스스로 무분별한 회사자산 사용의 문제점을 깨닫고구성원 절도가 당연시되지 않는 조직 분위기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소확횡의 원인에 대해서도, 구성원들이 회사 안에서 느끼는 불만족을 소소한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삼일회계법인의 '사내 실시간 익명 소통플랫폼'을 참고해 보자.
'오늘의삼일'은 모바일로 회사-팀-개인 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온라인 커뮤니티로, 삼일회계법인에서는 이를 통해 구성원의 목소리를 외부에 방치하지 않고 회사가 직접 그 의견을 듣고 검토하면서 직원과의 신뢰를 쌓고, 조직 내 오해를 해소했다.
직원의 참여는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주인의식을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개설 후 1년간 외부 익명 플랫폼에 등록된 사내 직원의 게시글이 82% 감소했고, 선동적인 글이 아닌 건설적인 글을 쓰는 문화가 정착됐다.
깨진 유리창이 방치된 동네는 범죄율이 상승한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의 소확횡은 죄의식 없이 시작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이 역시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제는 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소확횡'을 경계해야 한다.
Posted by 이호석 프로
SK에코플랜트 상생협력팀
공인노무사 / 경영지도사 / PHR
저서 ≪인사팀 이부장이 알려주는 위풍당당 회사생활 가이드≫ 《채용올인원》
'인사, 노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사 옮겨도 육아휴직은 1년, 사용 기간이 합산되는 이유는? (2) | 2024.10.28 |
---|---|
인사팀을 위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재무제표 활용 HR 대쉬보드 만들기 (2) | 2024.10.28 |
이 말 해도 되나요? 상사의 업무 지도와 괴롭힘 사이 (3) | 2024.10.21 |
육아휴직부터 출산전후휴가까지, 예시로 쉽게 정리한 법 개정 핵심 (1) | 2024.10.21 |
이러닝 교육 시 연장 근로 수당 분쟁을 예방하는 방법 (2) | 2024.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