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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노무이야기

퇴사 후 3년만에 갑자기 직장괴롭힘 신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마크6 2025. 2. 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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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자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어디까지 인정돼야 할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하는 여러 국가는 신고의 근본적인 목적을 '피해자의 자기 보호'에 두고 있다.
신고를 통해 가해자가 지금까지 했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가해행위를 중단시켜 피해자가 더 큰 괴로움을 겪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 관점을 바탕으로 이미 중단된 괴롭힘이나 더 이상 이어질 가능성이 없는 괴롭힘에 대해서는 신고를 제한하는 국가들이 있다.
현재진행형으로 괴롭힘을 겪고 있는 재직자의 신고만 인정해 주거나(호주 등), 사건 발생 후 6개월 이내의 신고만 인정해 주는 곳도 있다(아일랜드 등).
행정기관에 신고하기 이전에 반드시 사업장 내 신고를 거쳐 전문가의 검토를 받은 뒤 적절한 신고로 인정돼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퇴사자의 신고가 제한되는 국가도 있다(벨기에 등).
 
우리나라는 아직 신고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재직자와 퇴사자 모두 신고할 수 있으며, 마지막 가해행위 발생 이후 수년이 지난 사건도 신고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신고인이 보호받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신고하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정책의 근본적인 의의를 훼손하는 신고가 발생하는 것인데, 그 중 퇴사자의 신고는 재직자의 신고에 비해 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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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1. 보복을 목적으로 하는 신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퇴사 후에도 괴롭히겠다는 위협을 가하지 않았거나 실제로 괴롭히지 않았다면, 퇴사 이후의 신고는 자기 보호보다는 보복의 목적이 두드러진다.
보복성 신고는 본인에게 고통을 준 가해자 또는 갈등 관계에 있었던 사람을 신고함으로써 그들도 정신적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의 구현 차원에서는 이러한 보복성 신고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모른다.
신고를 통해 퇴사 이후에도 남아 있던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고, 가해자가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복성 신고는 가해자의 반성과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 어렵다.
물론 재직자가 신고한 경우에도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지만, 퇴사자의 신고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하다.
퇴사자의 신고는 재직자의 신고에 비해 적절한 조사 조치가 이루어지기 어려워 사건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
가해자는 본인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한 채, 신고로 인해 겪은 고충만을 기억하며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건이 흐지부지되지 않더라도, 퇴사자는 이미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가해자는 그들의 신고로 조사받으며 겪어야 할 고통을 부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신고 이후 회사 내부에서 발생하는 여파는 가해자만 겪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상 팔이 안으로 굽는 경우가 많아 퇴사자보다는 재직 중인 사람에게 동조하기 마련이다. 신고한 퇴사자를 문제 삼고, 가해자에게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해자는 더더욱 억울한 피해자 행세를 한다.

스스로 억울하다고 느끼는 가해자는 자기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성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신고한 사람이 원망스럽고, 그 신고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할 뿐이다.
신고인의 감정적 해소나 가해자 징계는 이루어졌지만, 가해자의 근본적인 인식 수준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
징계나 경고를 받은 만큼 노골적인 가해행위는 유의할 수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응어리를 해소할 기회를 찾으려 한다.

이 응어리는 다른 약자에게 향할 가능성이 크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즉, 퇴사자의 신고로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된 가해자가 그 억울함을 또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풀게 되는 것이다.
 

유형2. 사건 진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신고
 
퇴사한 이후에도 가해자가 괴롭힘을 이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퇴사 후 수개월, 심지어 수년이 지난 후에 신고를 접수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듯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신고가 접수되면 진상 파악이 어려워진다.
 
신고를 접수하는 피해자 중 사건 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두는 경우는 드물다.
사건이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도 모호하다.
필자가 접한 사례 중에는 퇴사한 지 5~6년 지난 퇴사자가 퇴사한 사업장에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되기 이전의 일을 법령 시행 이후 신고한 것이다.
이런 경우 보편적으로 신고가 인정되지 않지만, 해당 사업장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노무사나 변호사에게 자문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업주가 기본적인 준법정신은 갖춘 사람이었는지 신고를 접수해 내부적으로 처리하고자 했지만, 사건이 너무 오래된 탓에 피신고인은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고, 목격자도 찾을 수 없었다.
내부 직원이 자체 조사를 했지만, 조사에 전문성이 없었고 신고인은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결국 사업장은 조사를 포기하고 피신고인에게 사과하라고 지시했으나, 피신고인은 사건 정황이 확인되지 않아 사과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신고인은 이후에도 한두 번 더 피신고인을 신고했으나, 마찬가지로 조사에 임하지 않아 결국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다만, 사과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신고인은 회사 눈 밖에 나고, 결국 퇴사를 선택하게 됐다.
 
당시 사건의 정황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괴롭힘이 발생했는지를 알 수 없다. 가해행위가 있었더라도 중단된 지 오래됐으므로, 신고인이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
또한, 신고인이 사건 조사 요청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반복 신고한 상황은 오히려 신고인이 제도를 이용해 피신고인을 괴롭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유형3. 허위신고와의 연관성
 
퇴사자 신고는 허위신고와도 연관이 있다.
허위신고인이 신고 후에도 계속 재직하는 경우는 36.4%에 불과하고, 퇴사 후 신고하거나 신고 직후 퇴사하는 경우는 59.1%에 달한다.
이미 퇴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신고 이후의 여파를 가볍게 여기고 쉽게 신고하는 것이다.
물론 진(眞) 피해자 중에도 퇴사 후 신고하거나 신고 후 퇴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퇴사한 이후에도 신고할 정도면 보통 가해행위가 심각한 경우일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다가 퇴사 후에야 가해자의 손길에서 벗어나 신고를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진(眞) 피해자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겪은 사측의 부당행위와 2차 가해 등으로 인해 퇴사를 결정하기 때문에, 보통 신고 시점과 퇴사 시점 사이에 차이가 있다.
 

유형4.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신고
 
신고 직전ㆍ직후 퇴사는 실업급여를 목적으로 하는 신고와도 연관이 있다.
자발적 퇴사자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했다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사측이 퇴사자의 신고 문제를 호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원칙을 지킨다면 신고된 사건을 조사해 괴롭힘이 성립한다고 판단된 이후에 실업급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로서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처리하는 것보다 실업급여를 받게 해 주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
따라서 정석적인 조치보다는 실업급여로 적당히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감이 부족한 사측의 대응이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부적절한 신고를 강화하는 것이다.
 

나가며

살펴본 바와 같이, 퇴사자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계속 퇴사자의 신고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나라보다 먼저 관련 법령을 시행한 여러 국가에서 퇴사자의 신고를 제한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재직자의 신고도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에 치우친 경향이 있으며, 퇴사자의 신고는 보복성마저 두드러진다.
앞서 언급했듯, 보복성 신고는 또 다른 보복으로 이어지며 예방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도 예방 효과를 저해하고 제도의 취지를 흐리는 퇴사자의 신고를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Posted by 서유정 연구위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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