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이 신설됨에 따라 근로자들은 과거에는 '회사가 다 이렇지', '사회생활이 이런 거지'라고 문제의식 없이 넘겼을 수도 있는 부당한 조치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자신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도 있게 됐습니다.
사용자 역시 건전한 직장 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한층 노력을 기울이게 됐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접수부터 최종적인 가해자 징계와 피해자 보호에 이르기까지 직장 내 괴롭힘 처리 절차 전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반작용도 존재합니다. 바로 직장 내 괴롭힘을 마치 '기분 상해죄'처럼 인식하고, 직장 내 괴롭힘 개념과 그에 대한 조치를 다른 근로자나 사용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 경우입니다.
기분 상해죄란 '기분이 상하다'와 '상해죄'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하면 곧 잘못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돼 중립적인 제3자 입장에서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이 상당한 악의나 피해의식을 가지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나 다른 동료들을 괴롭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종종 맞닥뜨립니다.
그런데 모든 사회집단과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또한 의견충돌, 오해, 말실수,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대응 등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이를 모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관련 규정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욕설, 폭언 등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들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 19. 선고 2021나42155 판결
과장인 피고 A가 보고 문제에 관해 원고를 질책하는 과정에서 고성을 지르고 녹음을 지울 것을 요구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원고는 피고 A의 이러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피고 A에 대해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를 했을 뿐만 아니라 피고 A가 기상청 소속 공무원이었으므로 피고 대한민국에 대해도 국가배상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그 과정에 언성을 높이거나 다소 부적절한 언급이 있었더라도 이는 업무시간 중에 원고뿐만 아니라 중간보고자인 사무관도 불러서 함께 정당한 질책을 하는 과정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일 뿐 어떠한 악의적 의도나 감정을 가지고 계획된 행위는 아니었고 이러한 행위는 당시 일회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 이후 고성이나 폭언 등의 행위가 지속·반복된 것도 아니다"라는 점을 고려해 정당한 질책 과정에서 고성 등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2. 서울남부지방법원 2023. 5. 19. 선고 2022나63476 판결
이 사건은 직장 상사인 피고가 원고와 통화 중 "내 얘기 들어, 이 새끼야"라고 욕설을 한 사건입니다.
원고는 이러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법원은 직장 내에서의 어떠한 행위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가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해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는 해당 조항의 취지와 규정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관련 업무의 내용, 행위가 이루어진 시간·장소 등 상황과 형태, 행위의 내용과 정도, 의도나 경위, 반복·지속성의 유무, 행위자와 상대방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원고와 피고 사이에 업무와 관련한 통화 중 원고의 업무처리 행태 등에 화가 난 피고가 우발적으로 위와 같은 욕설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이고, 1회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통화에서는 존댓말을 사용한 점, 피고가 업무처리와 관련해 평소 원고에게 감정적인 반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3. 수원지방법원 2024. 6. 11. 선고 2022가단562363 판결
원고가 직장 상사인 3명의 피고에 대해 무시, 욕설이나 폭언, 조롱, 부당한 업무 지시, 차별행위 등을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면서 3명의 피고에게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를 했을 뿐만 아니라 피고 회사에 대해도 사용자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건입니다.
원고가 주장한 행위 모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았는데, 그중 문제 된 발언을 살펴보면, 피고 3인이 회의 중 "씨X", "지X병" 등의 욕설을 한 사실은 인정됐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이러한 발언이 업무상 적정 범위 내라고 하더라도 비속어 또는 욕설이 혼재돼 있어 공격적이고, 듣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 3인이 회의에서 원고가 계속 주장을 이어가는 것을 장시간 반박하다 감정이 격앙돼 한 발언이라고 설명한 점, 문제 발언을 제외하고는 원고가 주장하는 일상적인 욕설이나 유사한 언행이 인정되지 아니했으며, 문제 발언이 원고에 대한 직접적 욕설이라거나 원고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적 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 상황이나 해결 방안에 관한 내용으로 보인다는 점, 문제 발언이 일어난 회의 전·후 원고와 피고 3인의 사적 연락 내용을 살펴보면 원만하게 지냈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가 다른 라인으로 이동하는 대신 피고 3인과 함께 있는 부서를 스스로 택하기도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 문제 발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실무상 유의사항
이처럼 어떠한 행위가 구성원 간 단순한 갈등인지 아니면 직장 내 괴롭힘인지를 판단함에 있어 행위가 일회적·우발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아니면 계속적·반복적인 것인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비록 직장 내에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일회적·우발적인 것에 그쳤다면,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질 것입니다.
물론 부당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위와 같은 점을 미리 고려해 자기검열을 하거나 위축될 필요는 전혀 없고,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이 상정한 바도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용자로서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며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는 동시에 최종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해당성을 가릴 때에는 위와 같은 점까지 종합적·중립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Posted by 최윤희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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