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판단할 때 행위자의 의도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할까?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행위자의 의도를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요소로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다소 분분합니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행위자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 행위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됐다면 인정'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전문가들이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기준을 안내할 때 '행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함에 있어서 행위자의 의도를 고려하는 것이 자칫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행위자의 의도를 판단하는 것은 조사자 입장에서 대단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직장 내 괴롭힘 판단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행위자의 의도 여부는 회사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근무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선 분명히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이번 HR포스팅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시 행위자의 의도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지에 관해 살펴봅니다.
우발적 행위와 업무상 실수
최근 발생한 실무적 사례를 각색해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피해근로자 A는 사내 비위행위로 인해 정직처분을 받았습니다.
회사는 근로자의 징계 사실에 대한 공지를 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인사팀 직원 B는 정직처분에 대한 급여반영의뢰를 위해 급여팀에 징계 내용에 대한 품의서와 함께 내용을 메일로 전달하던 중 실수로 해당 메일을 해당 본부 직원 20여 명을 참조로 해 송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직 중이었던 피해근로자 A는 임시적으로 해당 본부 직원으로 대기발령 상태에 있었으므로 해당 메일을 함께 수신했고 자신의 징계 사실이 회사 내에 퍼질까 걱정하면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피해근로자 A는 인사팀 직원 B를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회사에 신고했습니다.
회사는 해당 사실이 단순한 업무상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하지만 피해근로자 A는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했고 노동청은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라 '회사의 조사가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 자체조사를 실시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노동청은 ①인사팀 직원 B는 인사담당 직원으로서 관계의 우위가 성립하고, ②근로자의 비위행위를 공지하지 않는 규정을 위반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를 했으며, ③고의성 여부를 떠나 피해근로자가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근무 환경이 악화됐으므로 인사팀 직원 B의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분은 노동청의 판단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필자는 노동청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에는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해당 사안에서 행위자의 고의성 여부를 배제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참고할 수 있는 비슷한 상황의 판례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 19. 선고 2021나42155 판결
직책이 과장인 피고 A가 원고를 질책하는 과정에서 고성을 지르고 녹음을 지울 것을 요구하는 등 과도한 언행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원고는 피고 A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그 과정에 언성을 높이거나 다소 부적절한 언급이 있었더라도 이는 업무시간 중에 원고뿐만 아니라 중간보고자인 사무관도 불러서 함께 정당한 질책을 하는 과정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일 뿐 어떠한 악의적 의도나 감정을 가지고 계획된 행위는 아니었고 이러한 행위는 당시 일회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 이후 고성이나 폭언 등의 행위가 지속·반복된 것도 아니다"라고 판단하면서 행위의 우발적인 부분과 의도성이 없었음을 언급했습니다.
2. 수원지방법원 2024. 6. 11. 선고 2022가단562363 판결
원고가 직장 상사인 3명의 피고로부터 무시, 욕설이나 폭언, 조롱, 부당한 업무 지시, 차별행위 등을 당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면서 3명의 피고에게 소송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피고 3인이 회의에서 원고가 계속 주장을 이어가는 것을 장시간 반박하다 감정이 격앙돼 한 발언이라고 설명한 점, 문제 발언을 제외하고는 원고가 주장하는 일상적인 욕설이나 유사한 언행이 인정되지 아니했으며, 문제 발언이 원고에 대한 직접적 욕설이라거나 원고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적 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 상황이나 해결 방안에 관한 내용으로 보인다는 점, 문제 발언이 일어난 회의 전·후 원고와 피고 3인의 사적 연락 내용을 살펴보면 원만하게 지냈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가 다른 라인으로 이동하는 대신 피고 3인과 함께 있는 부서를 스스로 택하기도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 문제 발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며 우발적으로 격앙된 감정이었던 점을 고려했습니다.
3. 서울남부지방법원 2023. 5. 19. 선고 2022나63476 판결
이 사건은 직장 상사인 피고가 원고와 통화 중 "내 얘기 들어, 이 새끼야"라고 욕설을 한 사건입니다.
원고는 이러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직장 내에서의 어떠한 행위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가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해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는 해당 조항의 취지와 규정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관련 업무의 내용, 행위가 이루어진 시간·장소 등 상황과 형태, 행위의 내용과 정도, 의도나 경위, 반복·지속성의 유무, 행위자와 상대방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원고와 피고 사이에 업무와 관련한 통화 중 원고의 업무처리 행태 등에 화가 난 피고가 우발적으로 위와 같은 욕설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이고, 1회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통화에서는 존댓말을 사용한 점, 피고가 업무처리와 관련해 평소 원고에게 감정적인 반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언급하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행위자 의도에 대한 판단
그렇다면 자칫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행위자의 의도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지침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종합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대법원 2017두74702판결의 성희롱 판단기준을 인용해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또는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의 구체적인 사정을 참작하고,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 환경 악화가 발생할 수 있는 행위였는지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행위자의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반응을 행위자가 인지했는지, 해당 행위가 일회적이었는지, 당시 행위의 구체적인 사정 등을 고려했는지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를 비춰 볼 때 인사팀 직원 B의 행위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피해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일회적이고 우발적인 행위였으며 전체 메일을 자주 활용하는 업무특성상 실수로 징계 관련 메일을 본부 직원에게 송신했다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본다면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결론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결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많은 근로자들이 직장 내 갑질에서 구제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많은 기업들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반작용으로 무분별한 진정과 신고가 발생하고 있고 갈등이 심화되면서 인사관리의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기준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행위자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은 경우 직장 내 괴롭힘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한다는 것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은 경우 곧바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곡해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됩니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 조사자는 판단기준의 다양한 해석 속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신홍교 노무법인
유앤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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