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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노무이야기

단계별로 확인된 기업의 직장 내 괴롭힘 편법적 대응 실태

마크6 2023. 7. 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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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첫 시행되고 2021년에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 외)은 직장 내 괴롭힘의 발생이 어떻게 사업주의 책임이 되는지 이해시키는 사전작업 없이, 사업주에게 강한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는 방식으로 실행됐다.
특정 행위에 대한 처벌은 그 처벌이 타당하다는 수긍이 있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사업주가 괴롭힘 문제를 본인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는 드물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수준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업주는 직장 내 괴롭힘을 본인과 직접 상관없는 타자의 일로 여기기 쉽다.
사업주 입장에선 그런 문제를 직접 나서서 대응해야 하는 것도 귀찮은데 하지 않으면 처벌까지 받아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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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말이 있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깊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의미다.
직장 내 괴롭힘은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고 복잡한 경우가 흔하다.
진(眞)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는 사업장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으며 그런 사람에게 잘못(가해 사실)을 인정시키고 징계를 수긍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정석적으로 해결하는 일'은 복잡한 생각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때문에 '조사→진상파악→조치→사후관리'라는 정석적인 절차를 충실히 따르는 대신 적당주의식 편법적 대응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기업 현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편법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지기 전, 직장 내 성희롱ㆍ폭언ㆍ폭력ㆍ누명 등 구체적이고 강도 높은 괴롭힘에 대해서만 법적 기반이 마련돼 있을 무렵 흔히 택하는 편법적 대응은 신고 무시 또는 신고 무마였다.
피해자가 비정규직이면 퇴사할 때까지 몇 달만 버티면 되는 일이었고, 정규직이면 피해자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엔 사업주의 신고 대응 의무가 강화되자 더욱 다양하고 교묘한 형태의 편법적 대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계별로 확인된 편법적 대응은 다음과 같다.
 




■ 신고 차단
신고 대응 의무는 신고가 접수된 이후부터 발생한다.
즉, 처음부터 신고가 접수되지 않게 하는 것이 의무를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사업장이 신고를 차단한 첫 번째 방법은 사내 대응 정책의 목표를 '괴롭힘 0건'에 맞추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강력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여기서 '0건'이란 수치는 신고 건수가 기준이 된다.
이러한 사내 정책을 실시한 사업장에서는 부서장과 선임들이 피해자의 신고를 막았다. 특정 부서에서 괴롭힘 신고가 발생하면 그 부서는 사업주의 눈 밖에 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신고접수를 접수하는 고충처리위원을 남성, 40~50대 이상, 인사부서원(부서장 또는 팀원)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회사 내에서 발언권이 있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 것이 적절하다는 핑계를 댔다.
하지만 남성과 40~50대는 비교적 괴롭힘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진다. 인사부서는 인사고과와 고용계약, 승진을 담당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신고를 위해 접근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인사부서 중심으로 대응하는 사업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피해자 보호보다 사업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 대응이 이루어진 경우가 흔했다.
더 나아가 사업주 본인을 고충처리위원으로 지정한 사업장도 있었다.

세 번째는 상식적인 인선으로 고충처리위원을 임명하되 직원이 누가 고충처리위원인지 모르게 하는 방식이다.
고충처리위원을 만나기 위한 첫 관문에 '인사부서 문의'를 넣고 인사부서가 껄끄러운 피해자가 신고를 포기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고충처리위원 본인조차 임명 사실을 모르다가 뒤늦게 깨닫는 일도 있었다.   


■ 신고 무마
신고 차단에 실패하면 다음은 신고를 무마시킨다.
신고를 무마시키는 첫 번째 방법은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이었다.
사업주가 나서서 그럴 사람이 아니다, 회사에 공로가 큰 사람이다,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괴롭히려고 한 게 아니라 피해자가 약해서 그런 것이다 등등 2차 가해성 발언을 한 사례들이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피해자를 회유하는 것이다. 사업주 또는 간부급이 나서서 굳이 문제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며 적당히 넘어가자고 피해자를 설득한다.
비정규직 피해자에겐 정규직 전환 가능성 언급하는가 하면, 정규직 피해자에겐 승진ㆍ인사고과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가 이를 수용한 이후 언급된 보상이 지급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도리어 비정규직 피해자는 향후 문제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며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정규직 피해자의 근평은 낮게 책정하거나 승진에서 누락시킨 사례를 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부 피해자가 약속된 보상을 받은 사례가 있었으나, 이는 주로 다수의 피해자가 있을 때 신고를 주도하는 한 명을 배제하고 다른 피해자에게만 지급된 경우였다. 피해자를 위한 보상보다는 신고 주도자를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 신고인의 권리 미전달
신고 무마에 실패하고 접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고의적으로 미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의 권리엔 보호받을 권리,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 조사관ㆍ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될 경우 교체ㆍ배제를 요구할 권리, 노조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조사에 동행 요청할 권리 등이 있다.
하지만 가해자로부터 항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담당자가 관련 내용을 피해자에게 알리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 피해자-가해자 분리조치 미실행
신고 접수 후, 피해자-가해자 분리조치는 경영진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지만, 가해자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거나 부서장인 경우 분리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가해자가 계속 부서장 역할을 하도록 둔 채 피해자에게 병가ㆍ유급휴가 등을 강요하기도 했다.


■ 부적절한 조사관 및 위원회 임명
경영진이 부적절한 조사관 임명으로 진상파악을 방해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경영진에게 매우 순응적인 직원, 사업주의 측근이며 회사 내 대표적인 가해자인 직원, 조사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직원, 신고된 가해자와 친분이 있는 직원, 과거에 피해자와 갈등이 있었던 다른 가해자, 경영진과 친분 있는 변호사ㆍ노무사 등 피해자보다 가해자ㆍ사측에 유리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판단할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조사관이 조사를 명목으로 피해자를 회유하기도 하고 강하게 압박해 신고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목격자 조사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의 증언보다 가해자 증언 중심으로 보고서를 꾸민 조사관, 아예 조사도 없이 허위로 보고서를 꾸민 뒤 피해자에게 서명을 강요한 조사관도 있었다.

편법적 위원회 활동을 살펴보면 소수의 법적 전문가와 다수의 순응적인 내부 직원으로 위원회를 구성한 경우, 노조의 추천 없이 경영진에게 순응적인 노조원을 선별해 위원회를 구성한 경우, 위원회로 임명된 직원을 회유한 경우, 가해자와 친분 있는 사람을 위원회에서 배제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경우, 아예 위원회 없이 사업주와 조사관만이 진상조사 결과를 검토하고 처리한 경우 등이 있었다.


■ 제멋대로 식 처리절차 및 기간의 적용
여성과 20~30대가 주로 당하는 허위 괴롭힘 신고를 처리할 때는 조사ㆍ위원회 절차도 지키지 않고 졸속으로 처리한 사업장이 많았다. 반면, 남성과 40~50대 신고 비중이 높은 진(眞) 괴롭힘 신고에 대해서는 처리 절차와 기간을 복잡하게 늘리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피해자가 비정규직이면 이 기간에 계약이 종료돼 사건처리가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피해자가 정규직이면 늘어지는 절차와 처리 기간 때문에 고통받고 2차 가해에 시달렸다. 가해자와 경영진이 피해자에 대해 부적절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고 제삼자들이 확실한 사건이라면 처리 기간이 길어질 이유가 없다며 2차 가해에 가담하기도 했다.


■ 발생한 행위의 경중과 무관한 경고ㆍ징계
허위 신고에 대해서는 신고인이 사건을 크게 만들려고 한다는 이유로 행위 대비 과도한 징계를, 진(眞) 괴롭힘 사건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리는 사업장의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징계 수위는 행위의 경중과 과거 사례에서 있었던 처분의 수준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하지만, 위원회에서 과거 사례 공유를 요청해도 사측이 거절하기도 했다. 


■ 징계처분된 가해자 보호
가해자가 징계됐음을 회사 내부에 알리지 않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정직 처분을 받은 가해자에 대해 질병으로 인한 휴직 등이 사유라고 알리기도 한다.
가해자 복직 이후에는 몇 달간 근무하지 못해 실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후임들에게 가해자가 기여하지 않은 일에 이름을 넣어주도록 지시한 사업장도 있었다. 


■ 가해자의 보복행위 방치
가해자가 피해자와 목격자에게 보복할 수 있도록 방치하거나 심지어 보복을 돕는 사업장도 있었다.
가해자를 피해자ㆍ목격자의 부서로 다시 복직시키는 경우, 피해자ㆍ목격자의 2차 가해 호소를 그들이 예민한 것이라며 무시하는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ㆍ목격자의 승진을 결정하는 인사위원회에 들어가는 경우, 피해자ㆍ목격자가 가해자를 인사위원회에서 배제해 줄 것을 요청해도 거부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 


■ 경영진의 2차 가해
가해 사실이 입증된 사건의 피해자에게 경영진이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복도 등에서 피해자를 마주칠 때 노려보거나, 회식자리에서 피해자를 간접적으로 비꼬는 발언을 하거나, 월례조회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 신고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동료에게 털어놨을 때 피해자에게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위와 같은 편법적 대응이 가능한 이유는 경영진의 태도 문제도 있지만, 사업장이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주체가 없다는 점도 기여한다.
신고를 아예 차단하거나, 신고 접수 이후 피해자가 신고를 취하하도록 압박하거나, 표면적으로만 절차를 지키는 척해도 모니터링할 방법은 신고뿐이다.
하지만 가해자 개인에 대한 신고조차 힘들어하는 피해자가 사측의 부당행위를 추가로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목격자가 피해자를 위해 신고해 줄 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조직을 상대로 하는 싸움은 개인이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관련 전문가, 노조 등이 각 사건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국내 경영진들의 태도나 조치 현황을 고려할 때 이런 모니터링 주체를 세우고 모든 사건에 대한 모니터링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서유정 연구위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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