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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노무이야기

익명으로 직장 괴롭힘을 신고한 경우에도 회사는 반드시 조사를 해야 할까요

마크6 2024. 3.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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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

그런데 익명 제보 등에 구체적 사실관계 기재 없이 추상적인 표현(가령, 직장 내 괴롭힘 유형에 해당하는 표현)만 기재돼 있는 경우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요?

근기법에서 말하는 ‘인지’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회사의 인지 여부에 대해 일반적인 판단 기준을 정한 판례나 행정해석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HR실무자로서는 괴롭힘 신고 접수 시 당황스러운 일을 겪게 될 수 도 있습니다.

이번 HR포스팅에서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의 ‘인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문언적ㆍ연혁적 검토

먼저, 인지(認知)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이고, 이때 ‘인정’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은 ‘괴롭힘이 발생했다고 확실히 여겨 알게 된 것’을 의미하므로, 문언상 인지는 단순히 아는 것보다는 약간의 구체성 혹은 확실성을 더 요하는 개념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을 처음으로 도입한 법률 제16270호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2019. 1. 15. 공포)은 당시 발의됐던 이정미 의원안과 강병원 의원안을 종합한 대안입니다. 위 두 의원안의 원문은 모두 ‘인지’가 아니라 ‘알게 된 경우’였는데, 입법 과정에서 알게 된 경우의 의미에 관해서는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안 반영과정에서 인지로 바뀐 경위에 대해서도 검토나 논의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2017. 11. 28. 일부개정으로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이 확인된 경우’ 사업주에게 조치의무를 부과하던 기존의 규정을 사업주가 ‘신고를 받거나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사업주에게 조사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조문의 내용을 변경했습니다(제14조).
그 이후 근로기준법은 2019. 1. 15.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처음 도입하면서 인지한 경우에 조사 의무를 부과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고용평등법상 알게 된 경우의 문구에는 변경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연혁적으로는 인지의 의미를 알게 된 경우와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2. 체계적 검토(처리 단계에 따른 구분, 조사 실시를 위한 요건)



(1) 처리 단계에 따른 구분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리 절차는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신고(1항) → 사용자가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조사 실시(2항) → 조사 결과 발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 조치(3항)로 구성돼 있습니다.

구조상 사용자의 인지는 신고 접수와 마찬가지로 조사 실시의 요건인데,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신고할 수 있고 신고하면 곧바로 조사가 실시된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인지와 알게 된 경우는 유사한 정도의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인지는 사용자가 조치를 취하기 위한 요건인 ‘확인’의 전단계로서 확인(틀림없이 그러하다는 인정)보다는 확실성의 정도가 낮은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조사 실시를 위한 요건
인지는 신고 접수와 마찬가지로 조사 실시를 위한 요건이라는 점에서 최소한 조사의 실시가 가능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은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제76조의3 제2항), 그렇다면 당사자가 특정되거나, 당사자에 준해 조사가 가능한 사람이 특정돼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체계상으로 인지는 당사자 또는 조사 대상자가 특정되는 등 조사의 실시가 가능한 정도로 사실관계가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결론 : 우리 법상 ‘인지’의 구체적 의미



인지의 문언상 의미와 인지가 사용자에게 조사 의무를 부여하는 요건이라는 점 및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의 체계적 지위를 고려해 보면 인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조사가 가능할 정도’로 당사자 등 사실관계가 특정되거나 구체화돼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조사를 거쳐 ‘확인’된 경우에 비해 더 낮은 정도의 확실성, 개연성을 의미합니다.

미국 판례의 해석상 인지 개념은 ‘알 수 있었을 경우’에 가까운 것으로 우리 법에 도입되지 않은 부분으로 볼 수 있고, 실제 인지가 우리 법의 인지와 유사한데 이는 ‘조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사실관계를 알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휘슬 블로잉 가이드라인들도 대체로 추가 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 정도의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는지에 따라 신고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일반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적인 행위 유형에 해당하는) 사안 유형에 대한 인식’과 ‘조사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른 인지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 가능성이란 다소 넓은 의미로 파악될 수 있어 실제 의미 있는 조사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에도 다수의 무의미한 조사를 시행한다면 조직문화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비용·효율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법체계상 인지가 성립하면 사용자에게 신속한 조사 의무가 부여되는 점, 사용자가 조사 의무를 위반할 경우 처벌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지의 성립을 쉽게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상 조사 의무를 다하면서도 조직문화를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인지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유의미한 조사 가능성’을 기준으로 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충분한 증거에 기반해서 조사를 진행했을 경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익명제보라도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 유형에 해당하는 사실이 적시돼 있고 유의미한 조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인지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발신인이 확인되지 않는 이메일 계정을 통한 익명제보가 특정인을 거론하되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 없이 ‘괴롭힘을 한다’는 주장만 하고, 이메일 회신을 통해 제보 내용을 구체화해달라는 요청에도 특별히 더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라면 유의미한 조사 가능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인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함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 이번 HR포스팅은 월간 노동법률 2024년 2월에 실린 '<직장내 괴롭힘의 '인지' 기준에 대한 검토> 곽민지 변호사의 기고글을 재구성하여 제작했음을 알립니다.

기사 전문은 월간 노동법률 홈페이지(www.worklaw.co.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곽민지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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