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대표와 합의만으로 연장근로가 포함된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개별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탄력근로를 거부한 엘지전자(LG전자) 근로자에 대한 징계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최수진)는 엘지전자 근로자 A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정직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14일 "근로기준법은 당사자 간 합의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연장근로는 병행 시행될 수 있다"며 "탄력근로제 합의에서 연장근로시간까지 포함해 근로시간을 정한 것이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탄근제 거부한 A 씨..."연장근로 강제해 부당"
A 씨는 엘지전자 서비스지점에서 일하는 외근 수리기사로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서울지부 LG전자지회 조합원이다. LG전자는 2021년 11월 A 씨에 정직 30일 징계처분을 내렸다. 탄력근로를 거부했다는 이유다.
탄력근로제는 업무량이 많을 때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나머지 기간의 근로시간을 줄여 1주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탄력근로제는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로 도입해야 한다.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 노동조합이, 과반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사람이 근로자대표가 된다.
A 씨가 탄력근로를 거부한 이유는 이렇다.
LG전자는 근로자대표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LG전자노동조합(LG전자노조)과 합의해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이 합의에 문제가 있다면서 반발했다. 연장근로는 근로자대표가 합의가 아니라 근로자 개별 동의가 필요한 사항인데 노사가 체결한 합의엔 사실상 연장근로를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엘지전자는 탄력근로제 도입 합의는 적법하고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연장근로에 관한 포괄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A 씨의 근로계약서에는 "회사의 사정상 긴급하게 부득이한 경우 회사는 시간 외 근무, 휴일근무, 야간근무를 명할 수 있으며 직원은 동의하기로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도 유사한 규정이 명시돼 있다.
금속노조는 회사가 제시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계획표상 소정근로시간과 연장근로시간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회사는 계획표에 매일 근로시간과 주별 근로시간을 각각 기재하고 있는데, 이 시간표만으로는 소정근로시간이 몇 시간인지, 연장근로시간이 몇 시간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다.
결국 쟁점은 연장근로가 포함된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를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만으로 도입할 수 있는지, 엘지전자가 사전 포괄 동의에 따라 근로자에 연장근로를 명할 수 있는지가 됐다.
A 씨는 징계가 부당하다면서 노동위원회를 찾았지만 부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회사 손을 들었다.
당시 중노위는 "근로계약서에는 부득이한 경우 시간 외 근무, 휴일근무, 야간근무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서비스 업무 특성상 매년 여름 성수기에 서비스 수요가 증가된다"며 "사용자가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를 사전에 대비하고 성수기 인력 운용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로 탄력근무제를 운영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정했다.
"연장근로 포함 탄근제도 가능해"...첫 법원 판단
법원도 탄력근로제 합의에는 문제가 없고 A 씨가 탄력근로를 거부한 것은 징계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탄력근로제가 연장근로를 포함하고 있어도 적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은 당사자 간 합의하면 12시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며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연장근로는 병행 시행될 수 있고 탄력근로제 합의에서 연장근로시간까지 포함해 근로시간을 정한 것이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연장근로시간을 구별할 수 없어 위법하다는 근로자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탄력근로제 합의서에는 연장ㆍ휴일근로를 포함한 실제 근무시간은 단위기간 내 1주를 평균해 52시간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근로자는 근로시간 중 12시간이 연장근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합의상 근로자가 주별 소정근로시간과 연장근로시간을 전혀 구분할 수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합의서에는 특정일에 실제로 근로해야 할 시간 총량이 명시돼 있어 근로자는 단위기간 동안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엘지전자가 연장근로를 명령할 '긴급한 필요'가 있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A 씨와 회사 간에는 '회사의 사정상 긴급하게 부득이한 경우' 연장근로를 하기로 하는 사전합의가 존재한다"며 "에어컨을 포함한 가전제품 수리는 7~8월 성수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고 긴급한 수리 건에 적시 대응하지 않으면 고객 손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성수기의 수리 수요 폭발을 이유로 한 연장근로 명령은 요건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엘지전자를 대리한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탄력근로제와 연장근로를 함께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한 첫 법원 판결"이라며 "동시에 연장근로 사전 합의 효력 범위, 탄력근로 근무스케줄 작성 방법에 관해서도 법원이 처음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A 씨 측을 대리한 정이량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변호사는 "연장근로는 근로자 개인이 동의해야 하는 것인데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 도입된 연장근로를 포함한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본 것은 개인의 동의권을 형해화할 수 있다"며 "특히 엘지전자의 경우 매년 성수기마다 업무량이 급증할 것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를 긴급하고 부득이한 상황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월간 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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