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연구하면서 필자가 접한 진(眞) 피해자들의 행동 패턴은 딱히 두드러지는 것이 없었다.
대부분 요구하는 것이 가해자의 행위 중단 또는 가해자와 본인의 분리 정도라는 것뿐이었다.
어떤 피해자는 겉으로도, 내면으로도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어떤 피해자는 겉으로는 꿋꿋했으나 속이 말이 아니었고, 또 어떤 피해자는 표면적으로는 무너진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단단한 심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괴롭힘을 당하면서 다른 대인관계조차 두려워하게 된 피해자가 있는가 하면, 가해자가 앞에 없을 때는 활발하고 잘 웃는 피해자도 있었다.
물론 괴롭힘 피해가 오랫동안, 더 심각하게 진행될수록 고정 관념적인 피해자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면이 있긴 했으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허위 신고인은 행동이 패턴화되는 경향이 확인되었으며, 피신고인과 목격자, 둘 사이의 응답에 높은 유사성이 있었다.
물론 패턴화된 행동을 보인다고 무조건 허위 신고인이라고 편견을 가져선 안 된다.
진(眞) 피해자임에도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일은 분명 있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가 괴롭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는 신고된 행위의 유형과 빈도, 심각성 등 객관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맥락 의존적인 한국인의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1. 허위 신고인의 행동 패턴
허위 신고인의 행위 유형을 살펴보면, 다수에게 '퇴사'가 키워드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퇴사를 먼저 한 뒤에 신고하거나, 신고 직후에 퇴사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59.1%에 달했다.
신고의 기본 의의는 피해자의 자기 보호, 가해자의 행위 중단이다. 하지만 이미 퇴사한 상태라면 둘 다 무관하게 된다.
가해자가 퇴사 이후에도 괴롭히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허위 신고인의 주요 요구 사항을 보면, 그들은 이미 퇴사했어도 신고하거나 또는 퇴사할 예정이면서 신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요구사항에서 보이는 패턴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은 공개 사과였다. 상대적으로 비중은 작으나 서면사과를 요구하는 때도 있었다.
진(眞) 피해자와의 차이점이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물론 진(眞) 피해자 중에도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토록 흔치는 않다.
서면 사과 요구도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다.
허위 신고인은 왜 이토록 사과를 많이 요구하는 것일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사과를 받고 나면 이후에 손해배상청구에서 승소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사과만 원하는 것처럼 하다가, 막상 사과를 받고 나면 돈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를 무릎 꿇리는 데 대한 쾌감'으로 짐작할 수 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뭔가로 트집을 잡은 뒤, 큰 소리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진상'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더욱이 허위 신고를 선임, 상사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흔하니,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일 때의 '쾌감'은 더욱 클 것이다.
공개 사과가 그 순간의 쾌감이 크다면, 서면 사과는 일종의 전리품이 된다.
피해보상금을 요구하거나, 자발적 퇴사를 하며 실업급여를 요구하고, 이미 사용한 연차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미사용 연차 수당을 요구하는 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대놓고 '금전'을 목적으로 하는 신고다. 실제로 필자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상담하는 카페에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는 글을 몇 번 보기도 했다.
근평을 상향 조정하거나 기여하지 않은 업무 실적을 인정해 주거나, 승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업장 내 신고와 함께 근평 상향 조정이나 승진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흔해지면서 필자에게 조언을 구한 곳도 있었다.
유급 휴가 요구는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피해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신고인 유급 휴가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에서 흔히 확인되는 것이었다.
해당 제도가 없는 사업장에서도 허위 신고인이 이러한 요구를 하는 상황이 확인되고 있다.
허위 신고인 중에는 몇 주 이상의 휴가를 요구하거나, 아예 몇 달 이상 장기간 무단결근한 사람도 있었다.
신고 직후가 아닌, 본인이 원하는 다른 때에 휴가를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3. 신고하는 방식에서 보이는 패턴
신고하는 방식에서도 두드러지는 면이 있었다.
가장 흔한 것은 과장되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신고하는 것이었다.
행위 자체를 과장되게 묘사하거나, 그 뒤에 피신고인이 매우 부정적이고 악의적인 의도로 그 행동을 한 것이라는 본인만의 해석을 추가하기도 했다.
유사하게 신고한 행위 대비 과도한 분노ㆍ피해 주장도 눈에 띄었다.
이런 사건을 겪은 사업장과 담당자의 태도도 함께 문제가 되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난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신고인이) 정상이 아닌 것 같으니 적당히 원하는 거 들어주고 끝내라"는 말로 피신고인에게 이중 고통을 가한 사례가 적지 않게 확인되었다.
최근에는 이런 허위 신고인의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정석으로 처리하는 사업장과 담당자의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왜곡 신고는 상식적으로 괴롭힘으로 볼 수 없는 행위를 괴롭힘인 것처럼 포장하여 신고하는 것으로, 감정적으로 시작되는 허위 신고에서 두드러지는 유형이었다.
피신고인이 한 어떤 행위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이 원하는 행위를 피신고인이 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고하는 것이다.
완전 허위 신고는 발생하지 않았던 사건을 신고하는 것으로, 생각보다 비중이 높은 편이다. 완전 허위 신고 단독으로 발생하기보단, 왜곡 신고나 과장 신고와 섞여서 발생하곤 한다.
회사에서 관례로 이뤄지는 행위를 신고하는 때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회사의 책임인 것이고, 문제가 없다면 괴롭힘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피신고인의 책임이 아님을 입증하기 쉬운 유형이지만, 많은 사업장에서 책임회피를 위해 피신고인 개인만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면서 적지 않은 피해자가 발생한 유형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회사 밖의 다른 창구(예: 노동청, 민간 인권 단체)를 통해 신고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허위 신고에서 흔한 편이다.
처음부터 외부 신고를 하거나, 신고 위협을 하면 사업장이 허위 신고인의 요구를 쉽게 수용해 주기 때문이다.
동일 행위를 반복 신고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 번의 신고에서는 정석으로 대응했던 사업장도 두 번, 세 번, 신고가 반복되면 허위 신고인의 주장대로 피신고인에게 누명을 씌우고, 허위 신고인의 요구에 응할 것을 강요하곤 했다.
실제 가해자가 아닌 사람을 신고하는 사례에서는 사건 발생 중 가해자를 말리던 목격자나 위로해 주려던 동료를 대신 신고하는 패턴이 두드러졌다.
남에게서 억울한 일을 당한 아이가 자신을 안아주는 엄마를 때리고 울며 화풀이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필자가 수집한 사례를 보면, 특히 나이가 어린 허위 신고인에게서 비중이 높은 신고 양태였다.
감사ㆍ평가ㆍ인사이동 시기의 신고는 설문조사에서는 비율이 높지 않았으나, 필자의 질적 연구와 타 전문가의 경험에서는 종종 언급되는 행위다.
허위 신고인 본인이 대상이거나 피신고인이 대상일 때 두드러지는 면이 있다.
본인이 대상일 때는 신고를 함으로써 승진이 되지 않거나 낮은 평가를 받거나 감사 지적을 받았을 때, 신고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높은 빈도로 확인되었다.
피신고인이 대상일 때는 피신고인의 승진을 막거나 평가를 낮게 받게 하거나 감사 기간에 피신고인을 신고하면 사측이 감사 지적을 피하고자 허위 신고인의 요구를 더욱 쉽게 들어주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피신고인과 갈등이 있는 다른 사람의 유도로 별다른 갈등이 없던 신고인이 허위 신고를 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4. 나가며
필자가 조사한 허위 신고인의 행동 패턴을 살펴봤다. 이런 연구에 대해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주장은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인식을 높이는 데에 적지 않게 기여해 왔다.
하지만 그 주장에 과도하게 매몰되면서 피해자가 사업장의 폭군이 되거나 허위 신고인이 상식 밖의 행위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제지하기 어려워지는 사례도 발생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신고 접수 이후에도 동료들과 웃고 소통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시각이다.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를 빌미로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때부터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허위 신고인은 엄연히 피해자가 아니며, 신고인이 곧 피해자라는 편견은 허위 신고인이 날뛸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범죄자를 프로파일링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의 행동 패턴을 연구한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위 신고인도 엄연히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운 행위의 가해자다.
그들이 함부로 날뛸 수 없도록, 그들 탓에 진(眞) 피해자가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당장은 그들에 대한 연구와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처음 연구를 시작할 무렵, 국내의 사람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다 큰 어른들 간에 괴롭힘은 없다" 또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다.
허위 신고의 존재와 허위 신고도 가해행위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20년 전쯤의 사람들과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허위 신고를 인정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가장 고통 받는 것은 노동시장의 약자인 20~30대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가장 허위 신고 당할 위험이 큰 집단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서유정 연구위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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