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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를 위반해 발생한 교통사고의 산재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까?

마크6 2024. 8. 1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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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중 ‘중앙선 침범ㆍ신호위반’ 교통사고도 산재 인정될까…법원 판단은?
위반 행위 경중보다 ‘사고 원인ㆍ고의성’에 따라 판결 달라져


근로자가 업무상 이동 중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로 사고를 당한 경우 이것이 업무상 재해인지를 놓고 법원마다 엇갈린 판결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의 경중보다 사고 원인과 고의성에 초점을 맞춰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법원이 아직까지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명확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선 침범'이어도 '고의성ㆍ사고 원인' 따져 판단

2022년 대법원은 협력사 교육에 참석했다 돌아오던 중 중앙선을 침범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A 씨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에서 제외되는 범죄행위에 의한 재해는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우를 의미한다"며 "중앙선 침범이 있었다고 해도 근로자의 운전 과정이 통상 수반되는 위험 범위 내의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중앙선 침범 사실만을 이유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고의 발생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 등 사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장재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존재하지만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에 의한 사고에 대해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며 "다만 대법원 판결 이후 하급심이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완화해서 판결하는 경향은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도 중앙선을 침범한 근로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에서 사고 원인이 단순 실수에 의한 것이라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출근 중이던 B 씨는 반대 차로에서 오는 덤프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충돌해 사망했다. B 씨가 중앙선을 침범해 발생한 사고였다. B 씨가 중앙선을 침범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B 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에 따른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사고의 직접 원인이 B 씨의 중앙선 침범이라는 법령위반이어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며 부지급을 결정했다. 이에 B 씨의 유족은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의, 자해행위, 범죄행위에 의한 부상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원은 B 씨의 중앙선 침범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법원은 B 씨가 고의로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고가 일어난 곳은 반대 차선이 잘 보이지 않아 사고 위험이 높은 곳"이라며 "B 씨가 음주 운전을 했거나 무리해서 운전해 고의적인 사고를 일으킬만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법원은 B 씨의 중앙선 침범이 자해나 범죄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 씨의 중앙선 침범이 운전자의 극단적 선택에 따른 현저한 일탈이라고 볼 정황이 없다"며 "중앙선 침범에 대한 B 씨의 중과실이 없고 단순 실수에 의한 것으로 중앙선을 침범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근로자의 중앙선 침범을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로 판단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며 "업무상 이동 중 중앙선 침범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재판부는 중앙선 침범 행위 자체가 아닌 위반행위의 원인을 기준으로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고의성 있으면 '단순 신호위반'도 산재 부정
 
반면, 법원은 '고의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경우 단순 신호위반이어도 업무상 재해를 부정하고 있다.
 
2021년 의정부지방법원은 배달 중 신호 위반에 의한 교통사고로 다친 배달 라이더 C 씨의 산재 신청을 기각한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C 씨의 부상은 신호 위반이라는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했다"라며 "20분 내에 배달을 완료해야 한다는 사정만으로 신호 위반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높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대전지방법원 역시 신호 위반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한 택시 기사 D 씨의 산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공단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명백한 고의로 신호위반을 하는 것이 택시 기사의 통상적인 운전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D 씨의 중과실에 의한 신호위반이 원인이 돼 사고가 일어나 범죄행위에 따른 부상으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사고 원인ㆍ고의성'이 판단 핵심…"기준 명확화" 목소리도
 
전문가들은 법원이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의 경중보다 사고 원인과 고의성에 초점을 맞춰 판단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 변호사는 "현재 법원이 산재보험법상 범죄 행위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의 경중 자체가 아니라 사고의 원인과 고의성이 주요한 판단기준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태형 노무법인 태흥 대표 공인노무사도 "업무상 이동 중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가 산재보험법상 범죄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해당 행위가 사고에 미친 영향과 고의성이 중요하다"며 "근로복지공단 지침도 이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원의 판단기준이 모호해 재판부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어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판단기준을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 변호사는 "법원이 고의성과 사고 원인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성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같은 사실관계라도 무엇을 단순 실수로 볼지, 고의로 볼지에 재판부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1심과 2심 판결이 달라질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법원 판결이 명확하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어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다"며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판단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인 변수가 많은 교통사고의 특성상 판단기준을 대법원이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장 변호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에 의한 업무상 재해는 고려할 원인 변수가 다양해 일률적인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법원이 일률적인 기준을 마련한다 해도 그것이 사건의 특성을 잘 반영해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Posted by 이재헌 기자
월간 노동법률
jh59@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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