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낡은 단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연봉상승, 워라밸 등 다양한 이유로 이직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고, 기업으로서도 그만큼 신규 채용 수요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채용 절차를 새로 진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에 수집한 구직자 정보를 보관했다가 추가 채용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차순위 구직자들에게 순차적으로 연락을 돌려 지원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간편할 수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이렇게 모아둔 정보를 편의상 인재풀(人才Pool, Talent Pool)이라고 하고, 인재풀 운용을 위한 목적에서 탈락자들의 정보를 보관할 수 있을까에 관해 HR 포스팅에서 정리했습니다.
채용절차법의 규율 대상이 되는 채용 서류란 ①기초 심사자료(구직자의 응시원서,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②입증자료(학위증명서, 경력증명서, 자격증명서 등 기초 심사자료에 기재한 사항을 증명하는 모든 자료), ③심층 심사자료(작품집, 연구실적물 등 구직자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모든 물건 및 자료)를 의미합니다(제2조 제3호 내지 제5호).
따라서 탈락자들의 정보 가운데는 채용 서류에 해당하는 정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정보도 있을 수 있으므로 경우를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채용 서류의 경우
탈락자가 제출한 채용 서류는 반환 대상 여부에 따라 기간의 차이는 있으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모두 파기해야 함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여기서는 탈락자)의 동의를 받아 개인정보를 당초 수집한 목적 이외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따라서 이 규정만을 보면 채용 서류 수집 시 채용이 아닌 인재 풀 운용 목적의 동의를 별도로 받아 둘 경우 탈락자의 채용 서류를 파기하지 않고 인재 풀 운용 목적으로 계속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채용 서류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기 어렵습니다.
◾️첫째, 개인정보보호법과 채용절차법의 관계.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호에 관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고(개인정보보호법 제6조 제1항), 채용절차법은 실제로 개인정보가 포함된 채용 서류의 반환 및 처리 방법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제11조).
따라서 채용절차법은 개인정보보호법과의 관계에서 특별법의 지위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채용절차법에는 구직자로부터 별도 동의를 받아 채용 서류를 계속 보관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전혀 없고 예외 없이 파기할 것을 명시할 뿐입니다.
물론 채용절차법 제11조 제4항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채용 서류를 파기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는 채용 서류를 파기하는 구체적인 방법(개인정보보호법 제21조)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지 파기 여부 자체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둘째, 채용시장에서의 회사와 구직자 간 지위의 불균형성.
구직자들은 해당 회사에 채용되기 위해 채용 서류를 제출하고, 어떻게든 회사의 눈에 들어 채용 과정에서 다른 구직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 구직자가 회사가 인재 풀을 운용하겠다며 목적 외 이용 동의를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채용절차법이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의 파기에 관한 제21조가 있음에도 채용 서류의 파기에 관한 내용을 재차 법제화해 이 점을 강조한 배경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채용절차법상 명시적인 허용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를 채용서류에 확대 적용하는 데에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이 점에 관한 고용노동부의 입장 변화.
고용노동부는 과거 향후 채용에 관한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탈락자의 개인정보를 계속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직자에게 보존기간 및 목적을 알리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바 있습니다[행정안정부·고용노동부(2012),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인사·노무편, 제27면].
그러나 2014년 채용절차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관련 설명 자료에서 위 내용을 삭제하고, "원칙적으로 채용 여부 확정 이후에는 채용절차법에서 규정하는 바에 따라 채용 서류를 파기해야 한다"고만 안내하고 있을 뿐입니다[고용노동부(2020),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업무 매뉴얼, 제260면].
따라서 응시원서, 이력서 등 채용 서류에 대해서는 설령 구직자로부터 별도의 동의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를 파기하지 않고 보관하기는 어렵습니다.
2. '채용 서류'에 해당하지 않는 개인정보의 경우
그러나 채용절차법은 채용 서류만을 대상으로 할 뿐이므로 채용 서류 외의 서류에 대해서는 채용절차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름, 연락처, 면접 점수(면접 점수 역시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있다면 개인정보에 해당할 것이나, 구직자가 제출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생성한 정보이므로 채용 서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등 채용 서류 외 개인정보의 경우 이에 대한 동의를 별도로 받으면 해당 정보를 인재풀 운용을 위한 용도로 보관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다만, 여기에도 유의할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본래 채용 과정에서 채용 전형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는 구직자의 동의 없이도 수집할 수 있습니다(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4호). 같은 맥락에서 채용절차법 역시 채용 서류의 수집에 관해는 별도의 동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채용 서류의 일부를 목적 외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인재풀 운용이라는 목적에서 채용 서류와 별도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므로 수집 및 이용에 대해 정보 주체인 구직자의 동의가 필요해 보입니다(동항 제1호).
위 동의를 받을 때는 ①개인정보의 수집·이용 목적, ②수집·이용하려는 개인정보의 항목, ③개인정보의 보유 및 이용 기간, ④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및 동의 거부에 따른 불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그 불이익의 내용을 알려야 합니다(제15조 제2항 제1호 내지 제4호).
둘째, 여기서 수집·이용하려는 개인정보의 항목은 채용 서류와 별도로 구직자로부터 수집(인적 사항 등)하거나 이용(면접 점수 등)하고자 하는 항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령 이때 회사가 수집하는 각종 정보를 결합해 이력서와 유사한 내용을 이루게 되면 이것은 사실상 채용 서류인 이력서를 별도의 동의를 통해 보관함으로써 채용절차법의 취지를 잠탈하는 것으로 평가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행 채용절차법 하에서는 인재풀 운용 목적에서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경우 이름이나 연락처 등 대상자를 식별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수집하고, 이력서의 주된 기재 사항인 경력 사항·자격증·특기사항·자기소개 등은 수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셋째,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의 보유 및 이용 기간에는 특별한 법적 제한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정보를 영구 보존하는 것은 기간을 설정하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 위반이라는 것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입장입니다[개인정보보호위원회(2021), 개인정보보호법 표준 해석례, 제34면].
즉 인재풀 운용 목적이라 하더라도 수집하는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2년, 3년 등 적당한 기간을 설정하고 해당 기간이 경과한 인재풀 정보는 파기하는 것이 좋다.
결론
그 어느 때보다도 이직 시장이 활발해진 상황에서 인재풀 운용에 대한 기업들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각종 채용 플랫폼이 등장하거나 구직자들이 직접 구인구직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정보를 올리는 등 구직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루트 역시 복잡·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반면 제정된 지 이제 갓 10년이 지난 채용절차법은 규정 자체도 간단할뿐더러 홍보도 충분치 못해 아직까지 채용절차법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기업도 많습니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하반기 불공정 채용 지도·점검 결과, 627개 사업장에서 무려 281건의 채용절차법 위반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채용절차법이 구직자의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기업들의 인재풀 운용 등 현실적 필요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랍니다.
Posted by 송연창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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