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라 할당표집으로 진행된 직장인 근로환경 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해 본 적 있다고 답한 근로자의 비중은 3.3%였다.
피해자로 분류된 응답자의 비율이 19%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피해자 6명당 1명만 신고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같은 샘플 안에서 허위신고 당한 경험이 있는 근로자는 1.4%, 허위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당한 근로자는 1.6%였다.
허위신고 피해율은 20~30대가 유독 높았고, 허위신고 협박 피해율은 여성이 남성의 3배 수준이었다. 허위신고의 주요 대상이 약자이며, 전체 괴롭힘 신고 대비 허위신고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시사한다.
근로자들이 허위신고라고 생각하는 신고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① 완전 허위신고 : 실제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일을 꾸며내어 신고
② 왜곡 신고 : 실제로 발생하긴 했으나 상식적으로 가해행위로 보기 어려운 일을 가해행위처럼 묘사해 신고
③ 과장 신고: 경미한 가해행위로 볼 수 있는 행위를 심각한 가해행위처럼 묘사해 신고
허위신고 전반적으로는 20~30대와 중간 관리자의 피해가 심각하다. 완전 허위신고와 왜곡 신고의 경우, 여성의 피해가 두드러진다. 남성은 과장 신고 피해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의 허위신고 피해는 심각하다.
우리나라처럼 설문 조사로 유의한 피해율 수치가 나오는 나라 자체를 찾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허위신고 수법이 점차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명이 공모해 사건을 만들어 내고,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신고되기 전에 선수를 쳐서 먼저 신고하기도 한다.
회사가 사업장 노조를, 노조가 회사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 신고하기도 한다.
다른 직원을 사주해 허위신고하도록 조종하기도 하고, 지역 내 반복되는 허위신고에서 특정 인사ㆍ노무 전문가가 계속 등장하기도 한다.
허위신고 발생 초기 단계에 막지 못한 결과 그 수법이 더욱 교묘해진 것이다.
◾️ 조직화 된 허위신고
과거 1명이 허위신고를 하던 사례에서 벗어나 점차 조직화된 허위신고 사례가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여러 명이 한 명을 대상으로 돌아가며 신고하거나 동시에 함께 신고하는 것이다.
여럿이 신고하면 신고 내용의 신뢰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목격자가 없거나, 있어도 조사 참여를 꺼린다면 피신고인이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 ~개월, ~년 뒤에 허위신고/퇴사 후 허위신고
진짜 괴롭힘 사례 중에도 피해 발생 수개월, 또는 수년이 지난 다음에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
피해자가 승진하면서 가해자와의 힘의 격차를 덜 느끼게 됐을 때 신고하는 사례였다.
이제는 허위신고인이 관련 행위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으로부터 수개월, 수년이 지난 다음에 신고하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피신고인은 물론, 목격자도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시간이 지난 다음에 신고하면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또한 퇴사 후 사측에 허위신고를 하고, 정작 조사 요청에는 좀처럼 응하지 않는 일도 있다.
사측이 신고인의 조사 거부로 사건 처리가 불가하다고 종결처리하면, 노동청 등의 기관에 신고한다. 피신고인뿐만 아니라 사측이 사건 종결 처리한 것도 문제 삼는다.
사건을 종결하지 못하게 하면서 사측과 피신고인 모두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묶어놓으면 사측은 피신고인에게 사과하고 허위신고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허위신고
피해자가 본인을 신고할 예정임을 알게 된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먼저 신고하기도 한다.
신고를 접수하면 신고인으로서 보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신고가 괴롭힘으로 성립되지 않아도 신고인 보호조치 기간은 적용된다. 설령 피해자가 신고해도 신고에 대한 조치를 인사상 불이익 금지 위반으로 몰아갈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신고하면 신고에 대한 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극심한 혼란이 발생한다.
◾️ 사측이 주도하는 허위신고
사측이 노조를 공격하는 일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전부터 성희롱, 폭언 등의 신고에서 확인되던 사례였다.
이제는 회사 내 구조조정을 위해 허위신고를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회사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직원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 직원에 대한 허위신고를 유도하기도 한다.
사건 조사부터 징계까지 사측에 의무를 부여하는 법적 조항을 이용해 오히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죄 없는 직원을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 노조가 주도하는 허위신고
노조가 피신고인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 신고를 하는 것 역시 이전부터 확인되던 사례였다.
새롭게 등장한 것은 회사의 결재라인 전체를 신고하는 것이다.
인사부서장과 감사부서장부터 사용자까지 전체를 다 신고해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한 사례에서는 신고 대응 역할을 담당하는 보직자들이 모두 신고되면서, 신고 조치에 대한 의사 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자 해당 사업장의 노조는 즉각 조치할 의무를 위반한 일로 사측을 신고하겠다고 했다. 사측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결재라인 전체가 가해자로 신고됐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사건 처리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사용자가 신고되지 않은 다른 경영진에게 인사 결정을 위임하자 노조는 그것마저 문제 삼았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엄연히 문제 해결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례 속 노조는 사측의 손발을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신고를 이용한 것이다.
◾️ 다른 직원을 사주해 허위신고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직원을 사주해 허위신고를 하게 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사주한 사람 중에는 허위신고를 한 사람의 인사권을 갖고 있거나 그들이 신뢰하던 상사ㆍ선임, 회사 내 고충처리위원, 인사부서장 등이 포함됐다.
특히 인사부서장이나 고충처리위원이 사주하는 경우 그들이 사건 처리를 직접 담당하기 때문에 허위신고의 프레임을 만들기도 무척 쉬웠을 것이다.
이렇듯 본인에 대한 신뢰와 신고 처리 관련 지식을 악용해 죄 없는 피신고인을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 허위신고로 피신고인에게 사과받은 후 민사ㆍ형사 소송
허위신고 발생 시 사측이 피신고인에게 사건이 마무리되도록 빨리 사과하라고 압력을 넣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수법이다.
허위신고인은 우선 사업장 또는 노동청에 신고해 사과를 요구한다.
첫 시도에 인정되지 않아도 재신고를 반복하다 보면 사측 또는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피신고인에게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가라고 권고한다.
사과를 받고 나면 수개월 또는 수년 뒤에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하거나 또는 경찰에 신고한다.
수개월, 수년을 기다리는 이유는 누명을 쓴 피신고인이 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 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과했던 전적이 혐의를 인정한 것처럼 돼 피신고인이 구제받기도 어려워진다.
게다가 개인 대 개인의 소송, 또는 형사사건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사측이 처음부터 잘못 대응했음을 깨달아도 피신고인이 사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없다.
민ㆍ형사로 넘어가면 피신고인이 스스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데, 변호사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선임된 변호사 스스로 피신고인에게 소액의 합의금에 동의하고 빠른 사건 종결을 조언하기도 한다. 그편이 오히려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본인의 피해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신고
이런 사례 속의 허위 신고인은 먼저 동료를 가해자로 신고한다.
신고를 접수하는 고충처리위원 또는 인사부서 담당자가 괴롭힘 성립이 어려울 수 있으니 신고내용을 보완해달라는 조언을 하면 그들을 신고한다.
노무사에게 의뢰한 뒤 노무사가 본인의 피해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노무사를 신고한다.
노동청에 신고한 뒤 근로감독관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면 근로감독관에 대한 민원을 넣는다.
신고에 대한 조치로 사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을 요구하고,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용자를 신고한다.
언론에 제보해 사건을 크게 터뜨리기도 한다.
신고 후에 본인을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을 2차 가해로 신고한다.
이런 식으로 신고와 관련돼 접하는 모든 사람을 신고해 손발을 묶은 뒤 손쉽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 전문가가 돕는 허위신고
유사한 산업 분야의 조직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허위신고로 의심되는 신고가 계속 접수될 때마다 특정 인사ㆍ노무 전문가가 등장한다는 제보를 몇 건 받은 바 있다.
상사로부터 로펌 고객사를 상대로 허위신고인 지원을 여러 차례 지시받았다는 전문가 본인의 제보도 있었다.
비록 소수지만 윤리를 지키지 않는 전문가의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제보된 사례 속의 비윤리적 전문가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시장'으로 취급할 뿐 신고에 연루된 사람들의 고통에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전문가로서 의뢰인과 감정적 거리를 지키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사례 속 전문가들은 같은 업종에 있는 제보자들도 느낄 만큼 심각한 공감 부족이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위와 같이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높은 허위신고 피해율과 조직화ㆍ지능화된 사례들은 근로자 보호를 취지로 만들어진 법령이 얼마나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초기에 개인이 하던 허위신고를 막지 않고 적당주의로 피신고인을 희생시켰던 사측, 법령 시행을 위한 기반을 사전에 마련하지 않고 법부터 통과시키고 처벌조항까지 도입한 정부,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가 작금의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초기에 놓쳤던 부분들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 객관성을 확보한 신고 인정 기준을 마련해 부적절한 신고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사측의 부적절한 신고 조치 행위를 감시하고, 신고해 처벌받도록 하는 모니터링 주체가 있어야 한다.
피신고인 개인에게 사측의 부적절 조치를 신고하라고 하는 것은 달걀로 바위 치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측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마음이 전혀 없는 허위 신고인이라면 오히려 쉽게 사측을 신고하겠지만, 직장에 대한 애착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 그 전에 사용자가 적절하게 신고에 조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측이 적당주의로, 근로자 한 명을 희생시키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허위신고에 대응한 것이 작금의 문제로 확산됐음을 알고 책임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 또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잘 이해하며 감수성을 지닌 인사ㆍ노무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양성 단계에서부터 그들이 전문가로서 본인의 의무를 잘 이해하고, 직업윤리를 지키도록 책임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윤리 의식을 상실한 전문가는 사회에 끼칠 수 있는 해악이 매우 크다. 전문가라는 점을 이용해 노측이나 사측에 부적절한 조언을 하고,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몰고 가거나 진짜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근로자를 대상으로도 인식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같은 근로자 보호 법령과 정책을 악용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활용하도록 근로자 교육해야 한다.
내가 불쾌했다고 무조건 괴롭힘은 아니며, 신고를 수단화하는 것이 무고행위가 됨을 알게 해야 한다. 상습적으로 허위신고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징계 조치가 허용돼야 한다.
허위신고는 사실상 가해행위이며, 회사의 조직 문화를 무너뜨리고, 진짜 피해자마저 편견에 시달리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위의 사항 대부분은 법령 시행 이전 또는 직후에 이미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렇지 않았기에 법령 시행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직장 내 괴롭힘을 둘러싼 혼란이 해소되지 못하는 것이다.
Posted by 서유정 연구위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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