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같은 마음....

인사, 노무이야기

나만 그런 뜻으로 보이나? ... 직장괴롭힘 법령의 창의적 해석 사례

마크6 2024. 3. 18. 09:17
728x90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는 주로 회사에서 높은 직급을 갖고 있고 회사의 핵심 간부들과도 오랫동안 함께 일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사용자ㆍ핵심 간부들과의 친분도 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친분이 없더라도 가해자의 뒷배경이 탄탄하기 때문에 사용자조차 눈치를 보는 일도 있습니다.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사업장에서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영진이 창의성을 발휘한 경우를 꽤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례 중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구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른 한국어는 그 특성상 조사 하나에 따라서도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식마저 내려놓으면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상상도 못 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말의 특징조차 악용한 법령의 창의적 해석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법령의 창의적 해석 사례1.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들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제76조의2) 



우리나라 법에서 지정한 직장 내 괴롭힘의 주요 판단 기준에는 고의성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를 이용해"라는 문구가 있으니 가해자에게 의도성이 있어야 괴롭힘으로 인정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한 사업장의 경영진도 바로 이런 해석을 활용했습니다. 해당 사업장에서 신고된 행위는 매우 극심한 갑질 행위와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은 성희롱이었습니다.

이런 행위들이 오랫동안, 여러 차례 반복됐습니다. 괴롭힘 행위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위원회에서는 해고 조치가 타당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가해자는 결과에 불복하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경영진들은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으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의성이 없다', '고의성이 없다=괴롭힘으로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라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가해자에게는 그만큼 낮은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비록 행위에 비해 낮은 징계긴 하지만 어쨌건 징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업장은 책임도 회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법령의 창의적 해석 사례2.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들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제76조의2) 



우위성은 해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판단기준입니다.

해외에서는 괴롭힘 행위가 일정 기간 이상 반복될 수 있었다는 점이 곧 가해자-피해자 간에 힘의 불균형(우위성)이 생겼다는 것으로 자동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법령에서 우위성을 언급하는 경우도 드물며 현장의 판례에서 언급되는 경우는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우위성 관련 논란이 자주 발생합니다. 행위 자체보다도 우위성에 집중해 명백한 괴롭힘 행위를 놓치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의 객관적인 특성보다 주변 맥락에 더 영향을 받는, 동아시아인 특유의 맥락 의존적 인지 방식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법령에서는 직급상의 우위 외에 관계상의 우위도 성립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실상 관계상의 우위를 판단하는 기준은 딱히 없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자와 동일한 직급자였던 사건에 대해 우위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인정해주지 않은 사업장이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겪은 괴롭힘 행위는 명확했고, 지속ㆍ반복성도 성립했으나 같은 직급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거부하고 막을 힘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경영진의 해석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신고 단계에서 경영진이 괴롭힘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아무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법령의 창의적 해석 사례3.

 

사용자는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해 '징계, 근무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제76조의3⑤)



이와 관련된 법령 문구는 징계를 반드시 하라거나 그 외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괴롭힘 사건의 경중에 따라 징계하기에 적절치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분명 징계가 무조건 필수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상식으로 생각해 봤을 때 어느 정도 수위가 있는 괴롭힘에는 징계가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조항을 악용해 상당히 수위 높은 가해 행위를 한 가해자에게도 아무 징계조치를 하지 않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가해자가 신고된 행위는 성추행과 갑질이었습니다. 해당 사업장에서는 가해자 보호를 위한 다채롭고 창의적인 편법이 발생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행위는 괴롭힘 성립으로 인정됐습니다.

다만 사측의 편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의 근무장소만 변경하고 징계하지 않는 또 다른 편법을 저질렀습니다.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에 따라 근무장소 변경을 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징계 없는 조치는 가해자에게 본인이 사실은 무혐의였으며 억울하게 이동당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릴 기반이 되어줬습니다.

가해자는 회사 전체에 본인이 무혐의였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렸고, 정황을 모르는 직원들은 가해자의 주장을 믿기도 했습니다.
노측은 가해자의 2차 가해를 막고, 2차 가해 행위에 대한 조치를 하라고 요구했으나 사측은 듣지 않았습니다.


 

※ 이번 HR 포스팅은 월간 노동법률 2024년 2월호에 실린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보호가 우선인 사업장의 창의적인 법령 해석> 기사를 인용하여 제작했음을 알립니다.

기사 전문은 월간 노동법률 사이트에서 더 많은 사례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서유정 연구위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