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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갈 때마다 메모지에 적어 놓고 가라! 직장괴롭힘 vs 정당한 지휘·감독권 행사

마크6 2024. 3. 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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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5.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가 신설됐다.

대법원은 위 조항이 신설되기 전 발생한 사안에 대해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직장에서의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면 이는 위법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서 피해 근로자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의 원인이 된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20다270503 판결)고 판시했다.

그러나 아직 어떠한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로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지에 관해 뚜렷한 기준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대체로 사실심의 판단을 존중하는 태도로 보인다.

HR포스팅에서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신설 전후에 발생한 몇 사안에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 여부를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관해 좀 더 상세히 살펴보려 한다.





1. 다리를 다쳐 재택근무를 하는 근로자의 꾀병을 의심하는 전자우편을 여러 차례 보내고 재택근무 중인 근로자에게 업무상 필요한 정보나 일정 공유를 거부한 행위

 

관련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3. 19. 선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단5266494 판결



근로자는 입사 후 곧바로 같은 팀 상사인 대리와 갈등을 겪었고, 팀장에게 고충을 제기하고 중재를 요청했으나 해결되지 않았다.

근로자는 상사의 부당한 대우 및 회사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다. 

법원은 상사가 근로자에게 ①업무를 부여하며 적절한 인수인계를 하지 않는 등 부당한 업무지시를 한 사실과 ②회의 중 폭언을 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한 사실은 이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고, ③상사가 근로자와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고 주소를 알려달라는 근로자의 요구를 거절한 행위와 ④다리를 다쳐 재택근무를 하는 근로자의 꾀병을 의심하는 전자우편을 여러 차례 보내고 재택근무 중인 근로자에게 업무상 필요한 정보나 일정 공유를 거부한 행위는 그러한 사실이 인정되나, 이는 근로자와 불화를 겪던 중 발생한 일로 사회상규를 벗어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리하면 ①, ②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기는 하나 그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③, ④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위 항소심 판결에 대한 쌍방의 상고(상사인 이사의 직장 내 성희롱 행위와 그에 대한 회사의 사용자책임은 인정됐기 때문에 쌍방이 상고했다)를 모두 기각해 위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업무를 부여하며 적절한 인수인계를 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고 보면서 재택근무 중인 근로자에게 업무상 필요한 정보나 일정 공유를 거부한 행위가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 것은 다소 의문이 있으나, 판결문에는 그보다 자세한 사실관계가 나와 있지 않았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법원은 위와 같은 상사의 정보 또는 일정 공유 거부에 어떠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 것이겠지만, '업무상 필요한' 정보나 일정 공유라 기재하면서도 어떠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사회상규에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 것인지에 대해 보다 상세한 설명이나 기준의 기재가 없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궁금한 실무가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2. 어디 갈 때마다 메모지에 적어 놓고 가라

 

관련 판례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5. 7. 선고 2020가단5296423(본소), 2020가단5296430(반소) 판결 



한편 위 하급심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기준에 관해 굉장히 상세한 기준을 기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상사는 위계질서 또는 경영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하직원에 대해 업무수행에 관한 포괄적인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부하직원은 상사의 지휘·감독권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상사의 지휘·감독권은 본질적으로 부하직원에 대한 심리적 압박·질책까지 수반할 수 있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사생활도 제한할 수 있다"라며 업무상 적정범위를 다소 넓게 인정하고, "부당한 지휘·감독권 행사가 필연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고, 부하직원의 업무와 관계없이 지휘·감독권이 행사되더라도 마찬가지다"라고 해 부당한 업무지시라 해서 반드시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위 하급심 판결은 "지휘·감독권 행사가 부하직원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방식으로 행사되는 경우에는 징계사유를 넘어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도 있"는데, 이때 반드시 형사법상의 범죄에 해당할 필요는 없고,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를 판단할 때는 '회사 내 위계질서, 지휘·감독권의 본질, 상사의 지휘·감독권 행사의 목적·행사 방식·횟수, 부하직원의 업무 능력·내용·중요성·시급성 및 부하직원의 지휘·감독권 수용 여부·수용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기재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들어가 보면 ①'공부 안 해도 여자는 먹고 살 수 있지 않느냐? 메신저 하지 마라. 메신저는 멍청한 애들만 하는 거다. 그래서 네가 멍청한 거다'라는 말을 한 것은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모욕적인 발언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②상사가 근로자에게 화장품 목록을 적어주고 화장품 가게에 가서 사 오라고 한 것은 부당한 지휘감독권의 행사이기는 하나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으며, ③어디 갈 때마다 메모지에 적어 놓고 가라고 한 것은 출근 후 업무태도에 관한 것으로서 상사의 정당한 지휘·감독권의 행사 범위 내로 당연히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근로자가 상사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며 청구원인으로 민법 제750조를 구성했기 때문에 법원은 지휘·감독권의 행사가 부당한지 여부와 불법행위인지 여부를 나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신설 전의 행위이기 때문에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표현 대신 부당한 지휘·감독권의 행사인지 여부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①과 같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불법행위에도 해당하고, ② 행위는 징계사유에만 해당한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반드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만약 이 사안과 유사한 사안이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신설 이후에 발생한다면 위 ②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해 손해배상 인정 여부와는 별론으로 사용자인 회사에게 근로기준법이 정한 의무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3. 그동안 전자파일 형태로 관리해 오던 소송 관련 서류를 모두 문서로 출력해 정리해라

 

관련 판례
대전고등법원 2022. 5. 12. 선고 2021나13620 판결



이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의 포섭범위, 특히 불법행위인지 여부를 다소 엄격하게 봤던 위 두 하급심 판결과 비교해 직장 내 괴롭힘의 포섭범위를 다소 광범위하게 인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내변호사인 근로자가 소속된 실의 실장인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위자료 청구를 한 사안이다.

이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에는 명백히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뿐만 아니라 '업무상 명백히 불필요한 것이거나 수행불가능한 것을 강제하는 행위', '업무상의 합리성이 없이 능력이나 경험에서 동떨어진 정도의 낮은 업무를 명령하는 행위' 등 외견상으로 업무 범위 내의 행위로 보이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기재했다.



이런 기준으로 근로자가 회사의 조직 변경으로 같은 직급의 실장이 있는 실로 배치되기는 했지만 과거 수행하던 업무를 그대로 수행했고, 실장은 비법률가로 실장이 회사의 사용자로부터 별도로 부여받은 미션이 있었던 것도 아니므로, 실장이 근로자가 기존에 상위 직급인 '책임' 급의 부장에게 결재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처리하던 업무에 대해서까지 자신의 지휘와 감독을 받아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근로자가 그동안 전자파일 형태로 관리해 오던 소송 관련 서류를 모두 문서로 출력해 정리할 것을 지시했으며, 근로자가 타 부서 업무협조를 위해 이석하는 것까지 제한하려 한 행위는 지위의 우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근로자의 업무 특성상 불필요한 것이거나 수행 불가능한 것을 강제하고, 근로자의 정당한 업무의 수행을 어렵게 하는 등으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회사의 업무분장규정과 회사의 결재처리 관행을 상세히 분석해 외견이 아닌 실질을 들여다보려 했다는 데 시사점이 있다.


결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정이 신설된 이후로도 수십 건의 하급심 판결례가 존재한다.
그중 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가 확정된 사건 3개의 사실관계와 하급심 판결의 기재내용을 통해 판단기준을 짐작해 보려 했다.

아직은 통일적인 기준이나 해석을 기대하기에는 충분한 판결례가 축적되지 않았다고 보인다. 
다만, 각각의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위해 여러 방향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간의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기간이 끝나고 다시금 직장 환경을 정립할 필요가 있는 현 상황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좀 더 많은 판결례가 축적돼 근로자와 회사의 입장에서 보다 쉽게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이번 HR포스팅은 월간 노동법률 2024년 2월호에 실린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하급심 판결 분석> 기사를 인용하여 제작했음을 알립니다.

기사 전문은 월간 노동법률 사이트(www.worklaw.co.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박정택ㆍ김이경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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