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2. 5. 27. 선고 2021구합70943 판결
이 사건 근로자는 2005년 택시회사에 입사해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반복 갱신하며 택시기사로 근무했다. 2020. 11. 6.자로 근로자의 정년(만 60세)이 도래하자, 정년 도래에 따른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하고 근로관계를 종료했다.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정년 이후에도 촉탁직으로 재고용한다는 의무규정을 두고 있거나 촉탁직 재고용을 위한 요건, 절차를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2018년경 이후 정년이 도래한 택시기사 13명 중 이 사건 근로자를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촉탁직으로 계속 근무했다. 이 사건 근로자는 정년 도래 전에 회사에 촉탁직 재고용을 요청한 적이 없었고,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사건 근로자는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에게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촉탁직으로 재고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이에 대해 경기지노위는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구제신청을 기각했고(경기2020부해2746), 중노위는 정년 도래로 근로관계가 종료됐으므로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 재심신청을 기각했다(중앙2021부해397).
2. 대상판결의 주요 내용
가. 논의의 주소 : 정년 이후 최초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 인정 여부
대상판결에서는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에게 최초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 됐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① 일반적인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 법리(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7두1729 판결) 및 ② 정년 이후 촉탁직 근로계약이 체결된 경우의 갱신기대권 법리(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두50563 판결)를 기초로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했고, 합리적 이유 없이 정년이 도래했다는 사실만으로 촉탁직 재고용을 하지 않은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나. 판례의 갱신기대권 법리
(1) 일반적인 기간제 근로계약에서의 갱신기대권
대법원은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시행 이전부터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보호를 위해 갱신기대권 법리를 형성해 왔다. 기간제 근로계약의 경우 근로계약 갱신에 관한 규정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된 경우에는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이 인정되고,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부당하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이며, 기간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기간제법 시행 이후에는 근로계약 기간 2년 초과 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 되므로 기존 갱신기대권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으나, 대법원은 기간제법 시행 이후에 체결된 기간제 근로계약의 경우에도 갱신기대권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이른바 '정규직 전환 기대권'까지 인정했다.
(2) 정년 이후 촉탁직 근로계약이 체결된 경우의 갱신기대권
나아가 대법원은 정년 이후 체결된 촉탁직 근로계약의 갱신 시에도 기존 갱신기대권 법리를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즉 대법원은 "기간제법의 입법 취지가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하면,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갱신기대권 법리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해서, 만 55세 이상 고령자와 같이 기간제법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인 자에게도 갱신기대권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 경우의 갱신기대권 판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갱신기대권 판단기준 이외에 '직무수행 능력과 업무수행 적격성, 연령에 따른 작업능률 저하나 위험성 증대의 정도, 해당 사업장의 정년이 경과한 고령자의 근무실태 및 계약 갱신 사례' 등과 같은 추가적인 고려요소를 제시했다.
(3) 정년 이후 최초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 인정 여부
종래 대법원은 취업규칙에 '정년에 도달한 사원의 경우라도 회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정년일로부터 3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더라도 "정년에 도달해 당연퇴직하게 된 근로자에 대해서 사용자가 그 정년을 연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서, 해당 근로자에게 정년연장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최근 노동위원회나 하급심은 명확한 기준 없이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한 사례와 부정한 사례가 혼재해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다. 대상판결의 주요 내용
1) 대상판결은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하면서, 일반적인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 법리 및 정년 이후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의 갱신기대권 법리를 적용했다. 대상판결은 "위 판례(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두50563 판결)는 정년 도래 후 기간을 1년으로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되자 계약 종료 통보를 한 사안이지만, 정년 도래 후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했던 자의 갱신기대권과 동일하게 정년이 도래한 자의 촉탁직 계약체결에 관한 기대권 또한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을 통한 실질적 근로관계의 존속에 관한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이를 인정해 근로자의 정당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음은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곧바로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가 정년 도래 후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했던 근로자보다 고령자 고용안정 측면에서 더 두텁게 보호될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2) 대상판결이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한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근로계약, 단체협약, 취업규칙에는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으나, 2017년 말~2018년경부터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에 대해 촉탁직 근로자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 점, ②제도 도입 이후 정년이 도래한 13명 중 이 사건 근로자를 제외한 12명이 촉탁직으로 재고용된 점, ③촉탁직 재고용된 근로자 수(12명)가 회사 규모(50명 내외)의 4분의 1 정도로 적지 않은 점에 비추어 정년이 도래하지 않은 근로자들도 정년 도래 후 촉탁직으로 계속 근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거나 인식하고 있었을 것인 점, ④택시운전은 계속적·상시적 업무이고, 회사가 지속적인 채용공고를 내는 등 업무상 필요에 의해 촉탁직 근로자를 고용해 왔던 점, ⑤만 60세 이후 계속 근로하더라도 곧바로 작업능률 저하 및 위험성 증가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근로자의 교통사고 건수(5건)는 근무기간을 고려할 때 아주 많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
3.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대상판결은 기존의 갱신기대권 법리를 근거로 정년 이후 최초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도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에 대해 일반적인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 법리 및 정년 이후 체결된 촉탁직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 법리를 적용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를 처음 촉탁직으로 재고용할지 여부는 기존 갱신기대권 법리의 적용 국면과 동일·유사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ⅰ)정년은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에 정한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근로자의 근로계속의 의사나 능력에 관계없이 근로계약관계를 종료하기로 정한 제도다. 정년이 도래하면 근로계약은 당연종료된다.
그렇다면 정년 후 재고용은 기본적으로 종전의 근로관계를 단절하고 새로운 근로관계를 형성하는 것인바, 기간제근로가 종전과 동일한 형태로 갱신될 것을 전제한 기존 갱신기대권 법리의 적용 상황과는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 (ⅱ)또한 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두50563 판결은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이 된 이후의 갱신기대권 문제로, 대상판결과 같이 처음 촉탁직 재고용 여부가 문제 되는 경우에까지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2) 채용은 일반적으로 사용자에게 상당한 재량권이 부여되는 영역이고, 정년 후 재채용에 대해서도 고령자고용법은 단지 노력 의무만 부과할 뿐이다(제21조 제2항).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대상판결과 같이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촉탁직 재고용 거절이 위법하지 않는 한 사용자의 재채용에 대한 재량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 특히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은 정년 이후 최초의 근로계약 체결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계약체결 후 갱신이 문제 되는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신뢰보호의 필요가 낮다고 생각된다. 대상판결은 2018년~2020년 동안 정년도래자 13명 중 12명이 재고용된 사정을 들어 신뢰관계 형성에 기한 기대권을 인정했는데, 과연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발생시킬 만큼의 신뢰관계가 형성됐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3) 정년 도래 후 촉탁직 재고용을 주장하는 근로자는 이미 정년까지 고용보장을 받은 사람이므로, 갱신기대권 법리를 통한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보장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 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은 고령자에 대한 소득 기회 부여에 방점이 있고, 이는 갱신기대권 법리의 본래 목적과는 구별된다.
4) 만일 대상판결과 같이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에 대해서까지 기존 갱신기대권 법리를 확대적용해 재채용 기대권을 인정할 경우, 사용자는 촉탁직 재고용 자체를 기피하게 돼 고령자 고용이 위축될 수 있고, 이는 고령자고용법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또한 신규채용 및 청년 일자리 감소, 노동시장 경직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
5) 따라서 대상판결이 정년 이후 최초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해서까지 갱신기대권 법리를 확대적용해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도출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4. 결론
취업규칙 등에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일정한 조건, 범위 내에서 정년퇴직자를 촉탁직으로 재고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우, 이는 일반적으로 재량규정으로 해석되는바,그로부터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들에게 촉탁직 재고용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나 기대권이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취업규칙 등에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을 보장하는 의무규정을 둔 경우에는 그에 근거해 재고용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에 관한 노동관행이 형성돼 사실상 제도로 확립된 경우에도 합리적 이유 없는 재고용 거절이 부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갱신기대권 법리를 확장해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한 사례는 주로 택시기사 사례로 보이며, 그 중 일부는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향후 대법원에서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 인정 여부에 대해 법리적으로 면밀하게 살펴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윤혜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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