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관련된 비위행위를 저지른 직원이 형사 기소되는 경우는 인사 담당자에게 큰 골칫거리입니다. 기소를 근거로 징계했더니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엔 징계를 취소해야 할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 법원에선 형사사건 무죄에도 불구하고 징계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다수 나오고 있습니다.
# 수협 판매 담당 직원 A 씨는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 고객으로부터 미회수된 금액을 받았다고 허위 보고하고 회계처리를 위법하게 했다. 이로 인해 A 씨는 업무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회사는 A 씨를 징계 해고했고, A 씨는 회사를 상대로 징계 면직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형사사건에서 업무상 횡령과 배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은 회사의 징계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 전직 경찰관 출신으로 DB손해보험에 입사해 보험사기 조사 업무를 담당한 B 씨와 C 씨는 보험사기 혐의가 있는 자동차 공업사에 경찰 압수수색 일정을 넘겨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두 사람이 기소되자 회사는 업무방해를 이유로 두 사람을 해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회사를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형사사건 무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 서울대 교수 D 씨는 소속 대학원생 E 씨를 해외 출장 중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대는 자체 조사를 통해 D 씨를 해고했지만 D 씨는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D 씨가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청구 기각 결정 취소 소송에서 해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세 사건 모두 징계 해고된 근로자가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받았음에도 법원이 징계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사건입니다.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면 징계 해고 사유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법원에선 둘을 명확히 분리해 판단하고 있습니다.
임인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대법원은 징계 혐의 사실의 인정은 형사사건의 유죄 확정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분리하고 있다"며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을 요구하지만 징계 혐의에 대해서는 그보다 낮은 고도의 개연성만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같은 비위행위에 대해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이 요구하는 증명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법원이 형사사건 유죄를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더라도 징계 해고 사유로는 적법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형사사건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징계 해고의 적법성을 인정한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근로자의 비위행위가 직무상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조직 질서를 훼손했다는 점입니다. 임 변호사는 "근로자 개인의 사생활 일탈로 인한 것이 아닌 직무상 권한과 지위를 남용해 일어난 비위행위라면 형사사건 유죄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조직 질서에 해악을 끼치는 비위행위가 돼 중대한 징계사유로 인정될 수 있다"며 "이러한 비위행위는 형사법상 범죄 성립의 증명까지 이루어지지는 못했더라도 해고 사유로는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형사사건 무죄 판결이 비위행위 사실 자체가 부정돼 무죄가 선고된 것인지, 회사의 손해나 근로자의 고의가 부정돼 무죄가 선고된 것인지도 주목해야 합니다.
법원은 DB손해보험 사건에서 B 씨와 C 씨의 비위행위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제공한 정보가 직무 수행상 알게 된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사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수협 사건에서도 회사의 손해 발생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며 업무상 횡령과 배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서울대 교수 해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일부 행위가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D 씨에게 고의가 없다고 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임 변호사는 "형사사건 무죄에도 불구하고 징계가 적법하다고 판단 받기 위해서는 형사사건 무죄가 행위 자체의 부존재가 아닌 형사법의 엄격한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증명이 부족함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어야 한다"며 "단순히 형사사건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여부만이 아니라 무죄 선고의 이유까지 검토해 징계를 유지할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근로자가 직무 관련 비위행위로 기소됐다고 명확한 내부 기준 없이 근로자를 징계하는 것은 기업에 부당 해고 리스크를 가져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징계 사유를 정할 때 형사상 범죄 혐의가 아닌 취업규칙에 명시된 징계 사유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 변호사는 "형사사건과 근로자 징계사건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며 "기업이 부당 해고, 부당 징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형사 혐의와 징계 사유를 혼동하지 않고 취업규칙에 징계사유를 명확히 규정해 징계 사유를 취업규칙에 규정한 사유로 특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내부 규정에 따라 징계 사유가 된다고 판단되면 형사 수사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내부 증거 수집을 철저히 진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임 변호사는 "형사재판의 엄격한 증거 법칙이 징계절차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회사는 직원 면담, 내부 증인 진술, 이메일, CCTV 등을 활용해 내부 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회사는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독자적으로 확보한 증거를 통해 근로계약상 의무 위반을 입증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이재헌 기자
월간 노동법률
'인사, 노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퇴근 후 웹소설 쓴 드라마 보조 작가, 겸직금지 약정 위반일까? (0) | 2025.12.10 |
|---|---|
|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로 생각해보는 직장에서의 상사명령 (1) | 2025.12.10 |
| 고용노동부, 노란봉투법 시행령 입법예고…노사 모두 ‘반발’(종합) (1) | 2025.11.27 |
| 휴가 중 업무 카톡 폭탄, 직원이 시간 외 근로 수당 달라고 한다면? (0) | 2025.11.20 |
| 올해 안에 못하면 과태료! HR 필수 법정 의무 교육 (0) | 2025.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