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선 리더의 방향성이 없다며 불안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이크로 매니징한다며 불만을 표한다.
리더는 어느 장단에 맞추어 줘야 할지 혼란스럽다. 굳이 꼭 리더가 되겠다고 선택한 길도 아닌데 리더 노릇은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보다 까다로워진 구성원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환경 역시 더욱 까다로워졌다. 변화가 빠르고 상황은 복잡하다. 빠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하지만,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면 성급하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
권위적 리더에게 맡겨졌던 과거의 결정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책임 있게 결단을 내리고 나면 '답정너'라 몰아세운다.
달라진 구성원, 복잡해진 환경은 리더에게 21세기의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빠른 환경변화와 더불어 성급해진 결정 방식에서 리더가 살펴볼 중요한 개념은 '에포케Epoché'다.
에포케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유래된 개념이지만,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에서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면서 현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에포케는 '심판의 연기Suspension of judgment'를 의미한다. 개인적 믿음, 선입견, 예상, 심지어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이론들까지 일시적으로 유보해 괄호 안에 넣고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
언뜻 생각하면 더 빨라진 세상에서 판단을 뒤로 미루라는 개념은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역설적인 개념이 빠르고 복잡한 세상에서의 현명한 결정을 돕는다. 구성원들은 리더와의 대화 또는 회의에서 어떤 의견을 개진했을 때 흔히 듣는 말이 '됐고!'라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리더는 이러한 '됐고 팀장'과 '됐고 상무'의 습관이 구성원의 좌절을 부추기고 조직의 현명한 결정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잊기 쉽다. '됐고'를 들은 구성원은 이후로는 입을 다문다. 굳이 새로운 중요 정보를 애써 수집하려 하지 않는다. 저절로 수집된 정보도 열심히 머리 쓰며 다루지 않는다. 리더의 지시나 의중을 읽는 일에 주력할 뿐이다. 리더의 '됐고' 발언은 구성원의 의견에 대해 쓸데없는 의견이라는 즉각적인 심판을 내린 데서 비롯된 행동이다. 구성원의 뻔하고 쓸데없는 의견에 호기심을 갖고 더 탐색하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런 의견을 내고 있는 구성원이 한심하고 모자라다는 생각마저 한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 어느 세월에 결정을 하느냐'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다가는 조직이 산으로 간다'는 리더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높은 책임감에서 나온다.
그러나 리더의 질문 하나가 구성원의 동기를 자극하고 조직의 긍정적 기여자로서의 자부심을 길러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상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전통적인 리더>
구성원 : 재택근무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리더 : 됐고, 코로나도 풀렸으니 사무실로 복귀합시다.
구성원 : …….
<에포케 리더>
구성원 : 재택근무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리더 : 재택근무를 하면 어떤 점들이 좋아지나요?
구성원 :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리더 : 협업이 어려워지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리더의 에포케는 쉽다. 질문을 통해 의견을 낸 구성원의 생각을 한 번 더 알아보면 된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구기욱 CEO
쿠퍼실리테이션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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