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 웨비나 개최…판례 70개가 가리키는 괴롭힘 성립요건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인사팀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게 정말 괴롭힘에 해당할까?”
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비교적 명확하게 적혀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상사의 질책은 어디까지 정당한 업무지시일까요? 직급이 낮은 직원들이 상급자를 따돌린 경우에도 괴롭힘이 될 수 있을까요? 단 한 번의 강압적인 면담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6년이 지났지만, 기업 현장의 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사노무 실무자 입장에서는 신고 접수 이후 조사 방향을 잘못 잡으면 피해자 보호, 행위자 조치, 징계 정당성, 회사의 사용자 책임까지 연쇄적인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HR포스팅에서는 지난 4월 29일 진행된 <노동법률> 웨비나에서 다룬 70여 개 판례의 흐름을 바탕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기 위한 3가지 핵심요건을 정리해봅니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직장 내 괴롭힘)를 해서는 안 된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6년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기업 현장에서는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직장 내 괴롭힘 정의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놓고 실무적인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법률>은 지난달 29일 '최신 판례로 보는 직장괴롭힘, 회사가 많이 놓치는 포인트' 웨비나를 개최해 '괴롭힘 성립요건'을 70여 개 판례를 통해 해석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웨비나는 김민표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이 맡아 진행했다.
①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
기업 실무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부분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할 것인지다.
가장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경우는 한 부서의 부서장이 소속 부서원을 괴롭히는 경우로, 이 경우엔 어렵지 않게 '지위의 우위성'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엔 특수한 관계에서도 지위의 우위성이 인정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정규직 근로자와 기간제 근로자 ▲교수ㆍ의사와 간호사 ▲유치원 원장과 보육교사 등의 관계에서도 지위의 우위성이 인정되고 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직접적입 지휘ㆍ명령 관계'가 없더라도 직위 체계상 상위라면 우위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전주지방법원 판결에 따르면 괴롭힘 행위자가 정규직 교사, 피해자가 계약직 도서관 사서였던 사건에서 정규직 교사가 도서관 업무에서 손을 뗀 이후에 괴롭힘 행위가 발생했지만, 법원은 정규직 교사가 도서관 업무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우위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 다음으로, '관계의 우위성'을 판단할 때는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역학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위원은 "말이 조금 어렵긴 하지만 핵심은 공식 직제상에 있는 지위의 우위성을 떠나 그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사실상의 우위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사례는 하급자가 상급자를 괴롭히는 경우다.
울산지방법원 사례에 따르면 하급자들 여러 명이 한 명의 상급자를 따돌리기 위해 별도의 단체대화방을 만들었다. 다른 직원들 앞에서 상급자에게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상급자에게 보고를 금지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상급자를 따돌렸다.
이러한 경우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법원은 하급자들의 공식 직급은 낮으나 근속연수와 사내 장악력을 통한 사실상의 우위를 이제 인정할 수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김 위원은 인사팀을 위한 우위성 진단 체크리스트로 ▲행위자가 피해자에게 직ㆍ간접적 지휘ㆍ명령 권한이 있는가 ▲부서가 달라도 직급 체계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위자인가 ▲나이, 근속기간, 학벌, 전문성 등에서 암묵적 우위가 존재하는가 ▲특정 파벌을 형성하거나 다수가 합세해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인가 ▲단발성ㆍ우발적 다툼인가 아니면 권력의 불균형을 무기화한 지속적ㆍ구조적 압박인가 등을 제시했다.
② 업무상 적정범위 초과
괴롭힘 판단할 때 발생하는 두 번째 쟁점은 '업무상 적정범위를 초과했는지 여부'로, 사실상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쟁점으로 꼽힌다.
폭행 등 신체적 괴롭힘의 경우 복잡한 해석기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법원에서도 괴롭힘을 즉각 인정하고 있지만, 실무에서 가장 어려운 경우는 언어적 괴롭힘이다.
언어적 괴롭힘도 판단이 쉬운 경우와 어려운 경우가 나뉜다. "미쳤냐", "잘못 걸리면 둘 중 하나 죽어야 끝난다", "모가지 비틀어버리겠다"와 같은 폭언이나 협박은 경우에 따라서 모욕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판단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과도한 질책' 수준이라면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한 예로, 하급자가 휴가와 출장에 대해 보고하지 않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공개적으로 질책을 한 경우는 어떻게 판단될까?
김 위원은 "휴가, 출장을 다녀온 하급자가 보고하지 않아 하급자에게 질책하는 건 사실 상급자가 업무상 적정 범위 내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문제는 '공개적'으로 질책을 했다는 것으로, 만약 상급자의 의도가 하급자를 공개적으로 망신주기 위해 질책했다거나 3개월 전 일로 반복적으로 해명을 요구했다면 언어적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어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언어적 괴롭힘의 4대 법적 판단기준으로 ▲고성, 비난, 질책을 정당화할 업무상 납득 가능한 사유가 전무한가(합리적 사정 부재) ▲일회성ㆍ우발적 발언인가 아니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괴롭힘인가(반복성-지속성) ▲발언의 수위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일상적 지도ㆍ조건ㆍ충고'의 수준을 명백히 넘었는가(수준 초과) ▲여러 사람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져 피해자의 모욕감과 수치심을 의도적으로 가중시켰는가(공개성) 등을 제시했다.
③ 신체적ㆍ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
마지막으로, 세 번째 괴롭힘 성립요건은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김 위원은 "앞서 두 가지 괴롭힘 요건인 우위성이 인정되고 업무상 적정범위를 초과했다는 점이 인정돼도 '신체적ㆍ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라는 결과가 없으면 괴롭힘은 성립하지 않는다"며 "즉, 신체적ㆍ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괴롭힘 성립의 필수요건이며, 괴롭힘 행위 자체가 부당한 것만으로는 괴롭힘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때 중요한 건 신체적ㆍ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를 판단할 때 '피해자와 같은 처지의 일반적ㆍ평균적인 사람'이 판단기준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나는 그 행동으로 고통스러웠다'와 같은 피해자의 개인적인 감수성이나 예민함에 의존해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김 위원은 "일반적ㆍ평균적인 사람 입장에서 객관적인 고통을 느꼈는지로 판단하라는 것이 70개가 넘는 하급심 판례의 일관된 판단기준"이라며 "노동위원회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쉬워 보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례에서 인정한 정신적인 고통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밀폐된 공간으로 근로자를 불러 강압적인 사직 요구와 함께 언성을 높이며 휴대폰을 테이블에 강하게 던지는 등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회성으로 이루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인정했다. 법원은 신체적 접촉은 없었지만,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심리적 압박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성립한다고 봤다.
김 위원은 "지속성과 반복성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긴 하지만 절대적인 요소로 보면 안 된다"며 "이 사례처럼 한 번 일어난 행위라도 행위의 정도나 강도가 세다면 이례적인 행위여도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고, 법원도 피해자를 보통 사람의 입장에 두고 판단했을 때 피해자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심리적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 사례"라고 했다.
근로자를 물리적으로 고립시켜 근무환경 악화가 인정된 사례도 있다.
건설 현장 안전팀장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화장실 통로 옆으로 자리를 강제 이동시킨 사건, 부당해고 복직자를 좁고 밀폐된 금고방에 홀로 배치한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같은 사건들에서 법원은 정상적인 근무 여건을 의도적으로 박탈시킨 사례라며 근무환경 악화를 인정했다.
물리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업무 도구나 업무 정보를 박탈하는 것도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사례가 될 수 있다. 법원 역시 복직자에게 구형 모니터를 지급하거나 업무용 PC를 회수, 업무용 단체대화방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 사례 등을 근무환경 악화로 인정했다.
김 위원은 "지위의 우위, 관계의 우위가 어떤 의미인지, 업무상의 적정 범위를 초과했다는 게 무엇인지,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이 뭔지, 근무환경 악화가 뭔지 등을 하급심 판례 실제 케이스를 종합해 각 기업과 조사자는 나름의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게 좋다"며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 대응을 훨씬 효율적으로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Posted by 이동희 기자
월간 노동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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